기도와 영적 여정 10. 거울에서 얼굴로, 프란치스칸 기도의 길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얼굴이 됩니다. 성프란치스코와 성녀 글라라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거울을 십자가에서 찾았습니다. 육화의 겸손과 수난의 사랑이라는 거울을 통해 하느님을 보았고 거울이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거울 앞에 오래 서 있는 사람은 자신의 얼굴을 알게 됩니다. 그러나 영혼의 거울 앞에 오래 머무는 사람은 자기 얼굴만이 아니라 하느님의 얼굴을 닮아가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성녀 클라라가 말하는 관상의 가장 깊은 신비입니다. 기도는 단순히 하느님을 바라보는 시간이 아니라, 하느님의 시선 안에서 나 자신을 새롭게 발견하는 시간이며, 그 발견이 마침내 존재 전체를 변화시키는 은총의 여정입니다. 관점 바꾸기는 나의 눈을 바꿉니다. 내가 하느님을 바라보는 관점에서 하느님이 우리를 바라보시는 관점으로 바꾸는 시선은 우리 삶을 통째로 변화시키는 영적 여정의 기초가 되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오로는 이 신비를 한 문장으로 표현합니다. "우리는 모두 너울을 벗은 얼굴로 주님의 영광을 거울처럼 바라보며, 주님의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화되어 갑니다."(2코린 3,18) 이 말씀은 관상의 목적을 분명하게 보여 줍니다. 거울을 바라보는 목적은 거울을 소유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거울을 통하여 자신의 얼굴이 변화되는 데 있습니다.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도의 목적은 특별한 체험을 소유하는 데 있지 않고, 그리스도의 얼굴이 우리의 얼굴 안에서 드러나는 데 있습니다.
그래서 프란치스칸 기도는 언제나 변화를 향합니다. 십자가를 바라보면서도 여전히 자기중심적인 사람이라면 아직 십자가를 깊이 바라본 것이 아닙니다. 복음을 읽으면서도 형제를 사랑하지 못한다면 아직 복음이 마음속까지 내려오지 못한 것입니다. 성체를 모시면서도 세상의 가장 작은 이들을 외면한다면 아직 성체의 신비가 삶으로 육화되지 않은 것입니다. 참된 관상은 반드시 삶의 변화를 낳습니다.
프란치스코가 평생 바라본 것은 십자가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바라본 십자가는 단순히 고통의 상징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자신을 끝까지 내어주시는 하느님의 사랑이었습니다. 그는 그 사랑을 오래 바라보다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 사랑을 닮아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의 눈은 연민의 눈이 되었고, 그의 손은 나누는 손이 되었으며, 그의 발은 가장 작은 이들을 향하여 걸어가는 발이 되었습니다. 마침내 그의 존재 전체가 복음의 얼굴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기도의 가장 놀라운 열매입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하여 새로운 얼굴을 얻게 됩니다. 육신의 얼굴은 세월을 따라 늙어 가지만, 영혼의 얼굴은 사랑을 따라 아름다워집니다. 오랫동안 용서한 사람에게는 용서의 얼굴이 생기고, 오래 기다린 사람에게는 인내의 얼굴이 생기며, 오래 사랑한 사람에게는 그리스도의 온유함이 스며듭니다. 사람들은 그 얼굴에서 설명할 수 없는 평화를 만나게 됩니다.
그 얼굴은 결코 화려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오래 사용한 성경책처럼 소박하고, 오래 기도한 수도원의 돌계단처럼 깊은 흔적을 지니고 있습니다. 세상의 성공이 새겨 놓은 얼굴이 아니라, 하느님의 자비가 오랜 세월 빚어 놓은 얼굴입니다. 그래서 성인들의 얼굴은 아름다워 보입니다. 그 아름다움은 외모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사랑이 오래 머물다 간 흔적입니다.
프란치스코는 「신자들에게 보낸 둘째 편지」에서 놀라운 말씀을 남깁니다. "우리가 사랑과 깨끗하고 진실한 양심으로 그리스도를 우리 마음과 몸 안에 모시고 다니며, 거룩한 활동으로 그분을 낳을 때 우리는 그분의 어머니가 됩니다." 이 말은 프란치스칸 기도의 절정을 보여 줍니다. 기도는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우리의 삶을 통하여 그리스도께서 다시 세상에 태어나시도록 하는 데 있습니다.
이것이 클라라가 말하는 거울의 완성이며, 프란치스코가 말하는 육화의 완성입니다. 거울은 얼굴이 되고, 얼굴은 다시 복음이 됩니다. 기도는 침묵 속에서 시작되지만, 사랑의 행동으로 완성됩니다. 바라봄은 닮아감이 되고, 닮아감은 살아감이 되며, 살아감은 다시 수많은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얼굴을 비추는 거울이 됩니다.
그러므로 참된 기도는 사람을 세상에서 떠나게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세상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게 합니다. 그리스도의 얼굴을 닮은 사람은 고통받는 이들 앞에서 외면할 수 없고, 상처 입은 이들 앞에서 무관심할 수 없으며, 가난한 이들 앞에서 침묵할 수 없습니다. 그 얼굴은 이미 하느님의 자비를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기도가 깊어진다는 것은 결국 얼굴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마음이 달라지고, 시선이 달라지고, 관계가 달라지고, 삶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그러한 변화는 어느 날 갑자기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매일 십자가를 바라보고, 매일 복음을 마음에 새기며, 매일 형제 안에서 그리스도를 만나려는 작은 충실함이 오랜 세월 쌓일 때, 우리는 어느새 그리스도의 얼굴을 닮아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때 비로소 우리는 거울 앞에 서 있는 사람이 아니라, 세상을 향하여 하느님의 얼굴을 비추는 사람이 됩니다. 우리의 말보다 우리의 삶이 복음을 전하고, 우리의 설교보다 우리의 존재가 하느님의 사랑을 증언하며, 우리의 얼굴에서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온유함과 평화를 만나게 됩니다.
이것이 프란치스코와 클라라가 평생 걸어간 길이며, 프란치스칸 기도가 우리를 초대하는 마지막 여정입니다. 거울 앞에 머무는 사람에서 그치지 말고,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의 얼굴이 되어 살아가는 사람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그때 우리의 삶은 하나의 살아 있는 복음이 되고, 우리의 존재는 오늘도 계속되는 육화의 신비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