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와 영적 여정 7. 수도승적 기도의 출발
성프란치스코가 나타나기 전까지의 영성은 수도승적 기도가 자리를 잡고 있었습니다. 먼저 수도승적 기도가 무엇이었는가를 살펴봅니다. 인간은 언제부터 하느님을 찾기 시작했을까요? 아마도 자신의 유한함을 깨닫던 순간부터였을 것입니다. 죽음을 바라보며 영원을 갈망하였고, 어둠 속에서 빛을 찾았으며, 사랑을 갈망하면서도 끝내 채워지지 않는 자신의 마음을 바라보며 인간은 자신보다 더 크신 분을 찾기 시작하였습니다. 기도는 바로 이 갈망에서 시작됩니다.
갈망은 인간이 만들어 낸 욕망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느님께서 인간의 마음속에 심어 놓으신 가장 깊은 흔적입니다. 인간은 무한하신 하느님을 향하여 창조되었기에 유한한 것으로는 결코 만족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많은 것을 가져도, 아무리 높은 자리에 올라가도, 아무리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도 마음 한가운데에는 설명할 수 없는 빈자리가 남아 있습니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이렇게 고백하였습니다. "주님, 당신께서는 우리를 당신을 향하도록 창조하셨으므로, 우리 마음은 당신 안에서 쉬기까지 안식을 얻지 못합니다. 이 고백은 수도승적 기도의 출발점이기도 합니다. 초기 수도승들은 이 갈망을 누구보다도 진지하게 받아들였습니다. 그들은 인간의 삶이 단순히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인간은 하느님을 향하여 창조되었으며, 그분께 돌아갈 때 비로소 자신의 참모습을 발견한다는 것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도시를 떠났습니다. 광야로 향하였습니다. 침묵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들의 목적은 세상을 미워하기 위해서가 아니었습니다.
세상의 소음이 너무 커서 하느님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광야에서 하느님을 기다렸습니다. 침묵 속에서 말씀을 들었습니다. 눈물로 기도하였고, 노동으로 마음을 다스렸으며, 금식으로 욕망을 정화하였습니다. 그들에게 기도는 하루의 한 부분이 아니라 존재 전체를 바치는 삶이었습니다. 그들이 찾았던 것은 특별한 체험이 아니었습니다. 마음의 순결이었습니다. 에바그리우스와 카시아누스는 마음이 맑아질수록 하느님을 더 선명하게 볼 수 있다고 가르쳤습니다. 인간을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것은 세상이 아니라, 세상을 붙잡으려는 집착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수도승들의 가장 큰 싸움은 세상과의 싸움이 아니라 자기 마음과의 싸움이었습니다.
교만과 탐욕, 분노와 허영, 비교와 경쟁, 명예를 향한 갈망, 자기 뜻을 내려놓지 못하는 완고함. 그들은 이러한 내면의 움직임을 '악한 생각들이라 부르며 평생 깨어 있기를 배웠습니다. 광야는 사실 사막이 아니었습니다. 인간의 마음이었습니다. 침묵은 소리가 없는 상태가 아니라 욕망이 조용해지는 상태였습니다. 고독은 사람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과 함께 홀로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수도승들의 기도는 언제나 자기 마음으로 돌아가는 여정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여정에는 한 가지 분명한 방향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위를 향한 여정이었습니다.
인간은 조금씩 정화되고, 조금씩 비워지고, 조금씩 하느님께 가까워지며, 마침내 하느님과 일치를 이루는 것을 목표로 하였습니다. 이러한 전통은 후에 베네딕토와 귀고, 그리고 중세 수도승들의 영성 안에서 더욱 체계적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그들의 길은 참으로 아름다운 길이었습니다. 수많은 성인들이 이 길을 걸었고, 그 길 위에서 교회의 영성은 깊이를 더해 갔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섭리는 여기에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13세기에 이르러 하느님께서는 한 사람을 통하여 이 오랜 전통에 새로운 빛을 더하십니다. 그 사람이 바로 아시시의 프란치스코였습니다. 프란치스코는 수도승들이 올라가던 그 산을 부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보다 먼저, 하느님께서 이미 인간에게 내려오셨다는 복음의 기쁨을 다시 발견하였습니다. 바로 여기에서 프란치스칸 기도의 새로운 역사가 시작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