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은 어제 복음의 말씀 곧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한다는 말씀에 이어지는 것으로서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서도 열매 맺지 못하는 세 가지 유형에 관한 가르침입니다.
첫 번째 유형은 길바닥 형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이 길바닥 같은 우리에게 떨어지면
우리에게 조금도 뿌리를 내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제가 이 비유를 또 비유한다면 음식을 줘도 받아먹지 않는 것입니다.
아예 거부하는 경우도 있고
입에 넣기까지는 하지만 바로 뱉어버리는 경우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이 전혀 맛이 없어 뱉어버리거나
하느님의 말씀에 관심이 전혀 없는 것입니다.
아마 다른 말씀이 더 맛있고 더 솔깃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두 번째 유형은 돌밭 형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이 돌밭 같은 우리에게 떨어지면
뿌릴 내리기는 하지만 이내 말라비틀어지는 경우입니다.
돌밭은 뿌리내리기에 어려운 토양과 환경을 말하는 것이고,
이것은 어려움이나 박해를 당하게 되면
하느님의 말씀을 언제 들었냐 싶게 잊어버리거나 저버리는 경우입니다.
어려움 중에 하느님 말씀을 생각해야 하고,
고통 중에 하느님 말씀이 떠올라야 하는데
고통에 함몰되어 그에게 하느님 말씀은 안 계시고 고통밖에 없거나
고통을 주신 하느님을 원망하여 하느님을 배반하는 겅우입니다.
세례를 받은 지 얼마 되지 않는 초심자가 환난을 겪으면
복 주시는 하느님인 줄 알고 세례를 받았는데
그 반대인 하느님께 분노하여 냉담자가 되는 것도 그 하나의 예입니다.
세 번째 유형은 가시덤불 형입니다.
세상 걱정과 유혹이 가시덤불처럼 무성하게 그를 뒤덮은 경우입니다.
흔히 말하듯 걱정이 너무 많아 기도할 수 없는 것이고,
유혹이 너무 많아서 말씀이 자라지 못하고 시달리거나
결국 하느님 말씀을 저버리고 유혹에 넘어가는 경우입니다.
그런데 오늘 가르침은 씨를 받아들이는 마음 밭 얘기이기도 하지만
씨를 뿌리시는 하느님 얘기이기도 합니다.
오늘 가르침의 시작도 이렇게 시작되지 않습니까?
“너희는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를 새겨들어라.”
전에도 여러 차례 얘기한 바 있지만
씨뿌리는 하느님이 어쩌면 훌륭한 농부가 아닙니다.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농부는 그 귀한 씨를 아무 데나 뿌리지 않습니다.
그런데 하느님 농부께서는 아무 데나 뿌리십니다.
길바닥 같고 돌밭 같고 가시덤불 같은 우리에게도 뿌리십니다.
그러고 보면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아무 데라고 생각지 않으시는 겁니다.
당신의 그 귀한 말씀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 우리를 여전히 귀하게 여기시고,
다시 말해서 말씀을 내리시기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말씀의 씨를 뿌리시는 겁니다.
이것을 더 깊게 그리고 감사하게 생각하는 오늘 저입니다.

강론하셨는지 비교하면 더욱 풍성한 내용을
알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