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 13,18-23
주님께서 친히 풀이해 주시는 이 비유에서
씨앗(말씀)은 똑같습니다.
다른 것은 그것을 받아들이는 ‘땅’, 곧 마음입니다.
오늘 특별히 눈길이 머무는 것은
‘가시덤불’입니다.
그곳에서는 말씀이 자라기는 하지만,
‘세상 걱정과 재물의 유혹’이 그 숨을 막아 버립니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이 가시덤불에서 ‘쉴 줄 모르는 마음’을 봅니다.
그는 고백합니다.
“당신께서 당신을 향해 저희를 지으셨기에,
저희 마음은 당신 안에 쉴 때까지 쉬지 못합니다.”
마음이 수많은 걱정과 욕망으로 흩어질 때,
우리는 어디에도 뿌리내리지 못합니다.
좋은 땅이 된다는 것은
그 가시덤불을 걷어 내고
마음을 ‘한 분’께 모으는 일입니다.
오늘 기리는 성녀 클라라가
바로 그 ‘좋은 땅’입니다.
그는 재물과 명예라는 가시덤불을 통째로 걷어 내고,
오직 그리스도 한 분께 마음을 모았습니다.
아무것도 갖지 않은 그 비움이
도리어 백 배의 열매 ― ‘가난의 빛’ ― 을 맺었습니다.
적게 가질수록 더 환히 빛난 것입니다.
문화 주간의 관점에서 보면
좋은 땅은 ‘비움’으로 만들어집니다.
말씀이 자랄 자리를 내주려면
먼저 가시덤불을 솎아 내야 합니다.
덜 가지고, 덜 분주하고, 덜 시끄러운 자리에서
말씀은 비로소 깊이 뿌리내립니다.
오늘 우리는 조용히 묻습니다.
내 마음의 ‘가시덤불’은 무엇인가?
나는 세상 걱정과 재물의 유혹에 말씀의 숨이 막히지 않는가?
나는 마음을 ‘한 분’께 모으고 있는가?
나는 비움으로 도리어 빛나는 ‘가난의 빛’을 믿는가?
주님,
제 마음의 가시덤불을 걷어 내 주소서.
세상 걱정과 재물의 유혹에 말씀의 숨이 막히지 않게 하시고,
클라라처럼 한 분께 마음을 모아 백 배의 열매를 맺게 하소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