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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나누기

2026년 7월 23일 목요일 아니마또레 평화기도 학교 말씀 기도

by 고도미니코 posted Jul 22,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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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복음 말씀 묵상 ✝️
마태 13,10-17
제자들은 묻습니다.
“왜 비유로 말씀하십니까?”
주님의 대답은 뜻밖입니다.
같은 비유를 듣고도
어떤 이는 ‘보아도 보지 못하고’,
어떤 이는 ‘마음으로 깨달아 알아본다’는 것입니다.
차이는 말씀이 아니라
그것을 받아들이는 ‘마음의 눈’에 있습니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이 ‘비유’를 하느님의 자비로 읽습니다.
비유는 신비를 단번에 쏟아붓지 않고
이야기에 살짝 감추어,
들을 준비가 된 이는 깨닫고
아직 굳은 이는 천천히 다가오도록 ‘기다려’ 줍니다.
그러니 ‘보지 못함’은
하느님의 인색함이 아니라
닫힌 마음의 결과입니다.
크리소스토모는 일깨웁니다.
참된 행복은
좋은 눈과 귀를 ‘가진’ 데 있지 않고,
그것으로 마음을 열어 ‘알아보는’ 데 있다고.

주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많은 예언자와 의인이 너희가 보는 것을 보기를 바랐다.”
우리는 그들이 그토록 갈망하던 그분을
말씀과 성체 안에서 날마다 뵙고 있습니다.
이 얼마나 큰 행복입니까.
문제는 그 행복을
‘익숙함’에 가려 알아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성모님은 이 ‘알아봄’의 모범이십니다.
그분은 평범한 구유와 일상의 사건들 속에서
하느님의 신비를 알아보시고,
그 모든 것을 ‘마음에 간직하여 곰곰이 되새기셨습니다.’
성모님처럼 마음으로 새길 때,
우리도 같은 일상에서 하늘 나라를 알아봅니다.

오늘 우리는 조용히 묻습니다.
나는 보면서도 정작 ‘알아보지’ 못하고 있지는 않은가?
나는 익숙함에 가려 은총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가?
나는 들은 말씀을 마음으로 깊이 새기는가?
나는 성모님처럼 일상에서 신비를 알아보는가?

주님,
보면서도 알아보지 못하는 무딘 마음을 열어 주소서.
익숙함에 가려진 은총을 새롭게 보게 하시고,
성모님처럼 마음으로 신비를 알아보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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