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와 영적 여정 2. 기도는 하느님을 찾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 발견되는 것이다
인간은 오래전부터 하느님을 찾아왔습니다. 산꼭대기에 올라 하늘을 바라보았고, 깊은 동굴 속으로 들어가 침묵을 들었으며, 광야의 적막 속에서 자신의 영혼을 비워 갔습니다. 세상의 소음을 멀리할수록 하느님께 가까워질 것이라 믿었고, 욕망을 하나씩 버릴수록 더 높은 진리에 이를 수 있으리라 희망했습니다. 인류의 영적 역사는 어쩌면 하느님을 향해 끝없이 손을 뻗어 온 인간의 역사라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입니다.
초기 수도승들도 이러한 갈망 속에서 길을 걸었습니다. 그들은 세속의 분주함을 떠나 광야로 향했고, 침묵과 금식, 철야와 노동을 통하여 마음을 정화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들의 목적은 세상을 미워하는 데 있지 않았습니다. 오직 하느님만을 사랑하기 위하여 자신 안의 온갖 집착을 비워 내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들에게 기도는 마음을 순결하게 하는 길이었고, 순결한 마음은 하느님을 뵙기 위한 준비였습니다.
그들이 남긴 영적 유산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깊은 가치를 지닙니다. 침묵은 사람을 진실하게 만들고, 절제는 욕망의 노예가 되지 않도록 도우며, 꾸준한 기도는 흩어진 마음을 하나로 모아 줍니다. 우리는 수도승들의 이러한 전통 안에서 하느님을 향한 인간의 순수한 갈망을 발견합니다. 그러나 프란치스칸 영성은 바로 이 갈망의 한가운데에서 새로운 빛을 비춥니다. 프란치스코는 하느님께 이르는 길을 인간의 상승에서 찾지 않았습니다. 그보다 먼저,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내려오셨다는 복음의 놀라운 사건을 바라보았습니다. 인간이 하느님께 가까이 다가간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인간의 가장 낮은 자리까지 몸을 굽혀 오셨다는 사실이 그의 영성의 출발점이었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관점의 변화가 아닙니다. 신앙 전체를 새롭게 바라보게 하는 전환입니다. 우리는 흔히 기도를 하느님을 찾아가는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프란치스코는 먼저 하느님께서 우리를 찾아오셨다고 고백합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하기 전에 하느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고, 우리가 그분을 부르기 전에 이미 우리의 이름을 부르고 계셨습니다. 기도는 이 사랑에 대한 응답입니다. 먼저 시작하신 분은 언제나 하느님이십니다. 그래서 프란치스칸의 기도는 경쟁하지 않습니다. 더 높은 경지에 오르려 애쓰지도 않고, 남보다 더 거룩해지려 애쓰지도 않습니다. 기도는 이미 우리를 품고 계시는 하느님의 사랑 안으로 자신을 맡기는 일입니다. 어린아이가 어머니의 품 안에서 안식을 얻듯이, 인간은 하느님의 품 안에서 비로소 자기 자신을 발견합니다.
기도가 깊어질수록 우리는 새로운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내가 하느님을 찾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평생 하느님께서 나를 찾아오고 계셨다는 사실입니다. 내가 문을 두드리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이미 문밖에서 오래도록 기다리시던 분은 하느님이셨습니다. 내가 길을 찾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 길은 이미 나를 향하여 걸어오고 계셨습니다. 그 길의 이름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러한 깨달음은 기도의 방향을 바꾸어 놓습니다. 기도는 더 이상 하늘을 향한 사다리가 아닙니다. 기도는 하늘이 땅으로 내려오는 신비이며, 영원하신 하느님께서 인간의 시간 속으로 들어오시는 사건입니다. 육화는 단 한 번 일어난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오늘도 우리의 삶 안에서 계속되고 있는 현재의 은총입니다. 그래서 프란치스칸에게 기도는 현실을 떠나는 일이 아니라 현실을 더욱 깊이 살아가는 일입니다. 들판의 꽃을 바라보면서 창조주의 숨결을 느끼고, 형제의 눈물을 닦아 주면서 십자가의 그리스도를 만나며, 상처 입은 세상을 품어 안으면서 하느님의 자비를 체험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세상을 버리고 계시지 않습니다. 오히려 세상 한가운데에서 끊임없이 당신 자신을 내어 주고 계십니다.
기도가 깊어진다는 것은 세상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바뀌는 것입니다. 이전에는 평범한 일상으로만 보이던 삶이 하느님의 현존으로 빛나기 시작합니다. 이전에는 귀찮고 힘겨웠던 관계가 은총의 자리로 변합니다. 이전에는 피하고 싶었던 십자가가 사랑을 배우는 학교가 됩니다. 이것이 프란치스코가 발견한 복음의 기쁨입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올라갈 수 없는 높은 곳에서 기다리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의 가장 낮은 자리까지 내려오셔서 함께 걸어가시는 임마누엘의 하느님이십니다. 기도는 바로 그분과 보조를 맞추어 걷는 삶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