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 12,46-50
얼핏 들으면
주님께서 가족을 멀리하시는 듯합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가족을 내치는 말이 아니라,
더 깊은 가족을 여는 말씀입니다.
핏줄로 묶인 가족을 넘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모든 이가
한 가족이 된다는 선언입니다.
성 대 바실리오는
이 ‘하느님의 가족’을 깊이 사랑한 교부입니다.
그는 믿는 이들이 함께 모여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공동체(수도 가정)를 일구었습니다.
그에게 교회는
출신과 신분이 다른 이들이
한 아버지의 뜻 안에서 형제자매가 되는 가정이었습니다.
핏줄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
가장 깊은 끈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모님은 이 가족에서 밀려나신 걸까요?
결코 아닙니다.
성모님이야말로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소서” 하고
아버지의 뜻을 가장 온전히 실행하신 분입니다.
그래서 그분은
육으로만이 아니라 ‘믿음으로’ 더욱 깊이
주님의 어머니이십니다.
교부들은 말합니다.
마리아는 그리스도를 몸에 잉태하시기 전에
먼저 마음에 모셨다고.
그런데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일’은
우리 힘만으로 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너무나 연약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령께서 오시어
‘우리의 약함을 거들어’ 주십니다.
연약한 다윗이 거듭 넘어지면서도
회개로 다시 일어나 하느님의 사람이 되었듯,
우리도 연약한 채로 성령께 기대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가족이 됩니다.
문화 주간의 관점에서 보면
이 새 가족은 경계를 가로지릅니다.
예술가도 과학자도, 가난한 이도 부유한 이도,
아버지의 뜻 안에서 한 식구가 됩니다.
이 ‘한 가족 됨’이
갈라진 문화를 잇는 가장 깊은 누룩입니다.
오늘 우리는 조용히 묻습니다.
나는 ‘아버지의 뜻’을 가장 깊은 끈으로 여기는가?
나는 핏줄과 출신을 넘어 형제자매를 받아들이는가?
나는 연약함을 성령께 내어 맡기는가?
나는 마리아처럼 ‘이루어지소서’ 하고 뜻을 실행하는가?
주님,
핏줄을 넘어 아버지의 뜻으로 맺어진 가족이 되게 하소서.
연약한 저희를 성령으로 거들어 주시어,
마리아처럼 ‘이루어지소서’ 하며
당신의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가 되게 하소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