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망이 사랑이 되기까지 7 회개, 갈망이 방향을 되찾는 순간
회개는 삶의 방향을 바꾸는 사건이기 전에 사랑의 방향을 되찾는 사건입니다. 우리는 오랫동안 회개를 죄를 세는 일로 배워 왔고, 잘못을 후회하는 마음으로 이해해 왔으며, 자신의 허물을 책망하는 종교적 행위쯤으로 생각해 왔습니다. 그러나 프란치스코에게 회개는 훨씬 더 크고 아름다운 은총이었습니다. 회개는 죄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다시 바라보는 것이었고, 자신의 실패를 붙드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자비를 다시 붙드는 것이었으며, 잃어버린 갈망이 본래의 방향을 되찾아 다시 사랑을 향하여 흐르기 시작하는 생명의 전환이었습니다.
강물은 바다를 향하여 흐르도록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길을 잃으면 웅덩이가 되고, 흐름을 잃으면 썩기 시작합니다. 인간의 마음도 이와 같습니다. 우리의 갈망은 본래 하느님을 향하여 흐르도록 창조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그 흐름은 자기 자신에게로 방향을 돌렸습니다. 인정받고 싶은 마음, 소유하고 싶은 마음, 지배하고 싶은 마음, 안전을 움켜쥐려는 마음이 하나둘 갈망의 강줄기를 가로막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렇게 영혼은 흐르지 못하는 물처럼 점점 무거워졌고, 기쁨은 줄어들었으며, 평화는 사라졌습니다. 회개란 새로운 강을 만드는 일이 아니라 막혀 있던 강물을 다시 바다로 흘려보내는 일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안에 새로운 마음을 억지로 만들어 넣으시는 것이 아니라, 처음 창조하실 때 심어 놓으신 사랑의 흐름을 다시 살아나게 하십니다.
프란치스코는 형제들에게 무엇보다도 **주님의 영과 그 거룩한 활동을 지니기를 갈망하라**고 권고하였습니다. 그는 인간이 자기 의지의 힘만으로는 결코 새로워질 수 없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습니다. 의지는 결심을 만들 수는 있어도 생명을 만들지는 못합니다. 결심은 잠시 우리를 붙들 수 있지만, 사랑은 우리를 끝까지 변화시킵니다. 그래서 프란치스코는 인간의 노력보다 성령의 활동을 먼저 말합니다. 회개는 인간이 만들어 내는 작품이 아니라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빚어 가시는 새로운 창조입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성령께서 머무르실 자리를 마련하는 것입니다.
성령은 시끄러운 마음보다 고요한 마음을 사랑하십니다. 수많은 욕망이 서로 소리를 지르는 마음에서는 그분의 숨결을 알아듣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기도는 침묵을 배우는 일입니다. 침묵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시간이 아니라 수많은 욕망들이 하나씩 제 목소리를 낮추는 시간입니다. 명예를 원하는 소리가 잠잠해지고, 인정받고 싶은 소리가 잦아들며, 비교하려는 마음이 힘을 잃고, 불안이 조금씩 숨을 고르면, 그 깊은 곳에서 아주 오래전부터 우리를 부르고 계시던 성령의 작은 속삭임이 들려오기 시작합니다. "너는 나의 사랑하는 사람이다." 이 한마디가 들리는 순간 회개는 이미 시작됩니다. 사람은 자신이 사랑받고 있음을 알게 되는 순간부터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흔히 죄를 끊어야 하느님께 가까이 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복음은 반대로 말합니다. 하느님께 가까이 갈수록 죄는 힘을 잃습니다. 빛을 맞이한 어둠이 스스로 물러가듯이, 사랑을 만난 욕망은 더 이상 예전처럼 사람을 지배하지 못합니다. 회개는 억지로 자신을 바꾸려는 긴장이 아니라, 사랑 안에서 자연스럽게 변화되는 생명의 성장입니다. 꽃이 피기 위하여 애쓰지 않듯이, 햇빛을 충분히 받은 나무가 저절로 열매를 맺듯이, 성령 안에 머무는 사람은 점차 그리스도의 마음을 닮아 갑니다.
프란치스코는 육과 영이 서로 싸우고 있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육체를 미워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말한 육은 하느님과의 관계를 거부하는 자기중심성입니다. 모든 것을 자기에게로 끌어들이려는 마음, 자신을 중심에 놓으려는 마음, 하느님보다 자기 뜻을 앞세우려는 마음이 바로 육의 정신입니다. 반대로 영은 언제나 관계를 향합니다. 영은 사랑을 흐르게 하고, 자신을 내어주게 하며, 다른 이의 기쁨을 자신의 기쁨으로 받아들이게 합니다. 그래서 육은 움켜쥐려 하고 영은 내어주려 합니다. 육은 증명하려 하고 영은 증언하려 합니다. 육은 지배하려 하고 영은 섬기려 합니다. 육은 자기 왕국을 세우려 하지만 영은 하느님 나라를 살아갑니다.
회개란 결국 이 두 흐름 가운데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가를 묻는 일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강요하지 않으십니다. 사랑은 언제나 자유를 존중하기 때문입니다. 성령께서는 우리를 밀어붙이지 않으십니다. 다만 조용히 초대하십니다. "나와 함께 걸어가자." 회개는 이 초대에 "예"라고 대답하는 것입니다. 성모 마리아가 "말씀하신 대로 제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라고 응답하였듯이, 프란치스코가 "이것이 내가 원하는 바다."라고 외쳤듯이, 회개는 하느님의 갈망에 인간의 자유가 기쁨으로 응답하는 순간입니다.
그래서 회개는 결코 우울한 길이 아닙니다. 회개는 가장 아름다운 자유를 향한 길입니다. 지금까지 나를 묶어 두었던 두려움에서 풀려나는 길이며, 인정받아야만 존재할 수 있다는 불안에서 벗어나는 길이며, 남보다 앞서야 행복할 수 있다는 거짓 믿음을 내려놓는 길입니다. 회개는 내 왕국이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나라가 내 안에서 시작되는 일입니다. 그 나라에서는 비교가 형제애로 바뀌고, 경쟁이 협력으로 바뀌며, 소유가 나눔으로 바뀌고, 두려움이 신뢰로 바뀝니다. 성령께서는 회개하는 사람 안에서 새로운 세상을 창조하십니다.
프란치스코는 회개하는 사람을 세 가지 아름다운 관계로 설명하였습니다. 그는 하느님의 말씀을 품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정배가 되고,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는 형제자매가 되며, 성령으로 말씀을 잉태하여 세상에 낳는 어머니가 된다고 말합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인간 이해입니까. 회개는 단순히 죄인이 의인이 되는 사건이 아닙니다. 회개는 관계가 새로워지는 사건입니다. 우리는 더 이상 하느님의 종으로만 머무르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정배가 되고, 함께 살아가는 형제가 되며, 세상 속에 그리스도를 낳는 어머니가 됩니다. 회개는 인간 존재 전체를 사랑의 관계 안으로 다시 태어나게 하는 성령의 신비입니다.
그러므로 회개는 끝없는 자기반성이 아니라 끝없는 사랑의 시작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넘어질 것입니다. 때로는 다시 욕망에 사로잡히고, 다시 자기 자신을 붙들며, 다시 길을 잃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께서는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강물이 수없이 굽이치면서도 결국 바다를 향하듯이, 우리의 갈망도 넘어지고 흔들리면서 마침내 하느님께 이르게 됩니다. 중요한 것은 한 번도 넘어지지 않는 것이 아니라, 넘어질 때마다 다시 사랑의 방향으로 몸을 돌리는 것입니다. 그 작은 방향 전환이 회개이며, 그 회개가 모여 한 사람의 인생을 복음으로 빚어 갑니다.
마침내 회개는 우리 안에서 하나의 고백으로 익어 갑니다. "주님, 저는 이제 무엇을 더 가져야 하는 사람이 아니라, 당신께 더 깊이 머물러야 하는 사람입니다. 저는 더 높이 올라가야 하는 사람이 아니라, 당신 사랑 안에서 더 깊이 내려가야 하는 사람입니다. 저는 더 많이 증명해야 하는 사람이 아니라, 이미 사랑받고 있음을 살아내야 하는 사람입니다." 이 고백이 영혼 깊은 곳에서 흘러나오기 시작할 때, 갈망은 다시 본래의 길을 찾고, 성령은 그 갈망을 따라 우리 삶 전체를 살아 있는 기도로 변화시키기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