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와 눈은 하늘에서 내려와 그리로 돌아가지 않고,
오히려 땅을 적시어 기름지게 하고 싹이 돋아나게 하여,
씨 뿌리는 사람에게 씨앗을 주고, 먹는 이에게 양식을 준다.”
“어떤 것들은 좋은 땅에 떨어져 열매를 맺었는데,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예순 배, 어떤 것은 서른 배가 되었다.”
오늘 독서와 복음을 같이 묵상하면 두 가지 의문을 품게 됩니다.
하나는 이사야서와 복음의 말씀이 모순되지 않는가 하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주님께서는 과연 훌륭한 농부이신가 하는 점입니다.
이사야서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말씀을 비처럼 내리시면
반드시 열매를 맺고야 말지 헛되이 돌아가지 않는다고 하는데
복음은 하느님께서 말씀의 씨를 우리의 마음 밭에 뿌리시지만
좋은 밭은 열매를 맺고 나쁜 밭은 열매 맺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것이 모순되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주님께서 훌륭한 말씀 농부시라면
왜 아무 데나 당신 말씀의 씨를 뿌리시냐는 점입니다.
저 같으면 제 말이 헛되이 돌아오지 않도록 열매 맺을 좋은 땅에만 씨를 뿌릴 텐데
주님께서는 좋은 땅과 나쁜 땅을 가리지 않고 말씀의 씨를 뿌리신다니 농부로 치면
당신의 그 귀한 말씀의 씨를 헛되이 낭비하는 농부가 아니고 뭐겠습니까?
그러므로 오늘 말씀의 숨은 뜻을 깊이 있게 이해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말씀의 씨를 우리가 보기에 낭비하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보기에 그런 것이지 하느님은 결코 그렇게 생각지 않으십니다.
우리는 이것을 이성적으로 보지 말고 사랑으로 봐야 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고 그분의 말씀도 사랑의 말씀입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사랑은 모두를 사랑하시고,
좋은 밭과 나쁜 밭을 가려 씨를 뿌리지 않으십니다.
선인에게나 악인에게나 똑같이 비를 내리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바로 또는 한 번에 열매 맺을 밭에만 당신 말씀의 씨를 골라서 뿌리시고
그렇지 않을 밭에는 뿌리지 않으셨다면 저에겐 아예 씨를 뿌리지 않으셨을 겁니다.
그러나 저를 너무 사랑하셨기에 열매 맺지 못하는 저에게 수없이 씨를 뿌리셨지요.
길바닥 같을 때에도 씨를 뿌리셨고 돌밭 같을 때에도 뿌리셨으며
가시밭 같을 때에도 씨를 뿌리셨으며 좋은 밭이 될 때까지 뿌리실 것입니다.
그러니 이사야서의 하느님께서 당신 말씀이 헛되이 돌아오지 않고
반드시 열매 맺게 하실 거라고 하신 것은 사랑의 의지 표시입니다.
우리가 열매 맺는 좋은 밭이 될 때까지 당신의 말씀이
잔소리가 되고 쓸데없는 말씀이 될지라도 당신 말씀을
거두거나 되돌리거나 하지 않으실 거라는 의지 표시입니다.
하느님께서 이렇게 사랑을 포기하지 않고 말씀하실 때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우리의 밭을 차츰 바꾸는 겁니다.
말하자면 객토(客土) 작업입니다.
길바닥 같은 밭을 점차 돌밭으로 객토하고,
돌밭 같은 밭을 점차 가시덤불 밭으로 객토하고,
가시덤불 밭 같은 밭을 열 배 열매 맺는 밭으로 객토하고,
그 밭을 차츰 서른 배, 예순 배, 백 배 열매 맺는 밭으로 객토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을 들은 우리는 나는 현재 어떤 밭인지 돌아볼 것이고,
객토 작업을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해나가기로 결심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