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 10,24-33
이 짧은 말씀 안에 ‘두려워하지 마라’가
세 번이나 울립니다.
주님께서는 박해와 미움을 숨기지 않으시면서도,
거듭 두려움을 거두라 하십니다.
그 두려움을 녹이는 근거는
바로 하느님의 자상한 돌봄입니다.
성 암브로시오는
창조를 깊이 묵상한 교부답게,
‘참새’와 ‘머리카락’의 비유에 마음이 머뭅니다.
한 닢에 두 마리씩 팔리는 하찮은 참새조차
아버지의 허락 없이는 땅에 떨어지지 않습니다.
우리 머리카락 한 올까지
이미 다 세어 두셨습니다.
암브로시오는 말합니다.
가장 작은 것까지 이토록 헤아리시는 분이라면,
하물며 당신 자녀인 우리를
어찌 잊으시겠느냐고.
하느님의 섭리는
멀리서 세상을 굽어보는 무심함이 아니라,
참새 한 마리까지 어루만지시는 자상함입니다.
그러기에 ‘두려워하지 마라’는 말씀은
위험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그 위험 한가운데에서도
우리가 잊히지 않았다는 약속입니다.
참새보다 귀한 우리를
그분께서는 한순간도 놓지 않으십니다.
돌봄 주간을 마무리하며 보면
이 말씀은
한 주간의 모든 돌봄이 어디서 흘러나오는지를 밝혀 줍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돌볼 수 있는 것은,
먼저 우리가 이토록 자상히 돌봄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머리카락까지 세시는 그 사랑을 믿는 사람은,
두려움 대신 그 사랑을 이웃에게 흘려보냅니다.
오늘 우리는 조용히 묻습니다.
나는 어떤 두려움에 짓눌려 있는가?
나는 참새까지 돌보시는 그 자상한 사랑을 믿는가?
나는 ‘잊히지 않았다’는 그 약속에 기대어 사는가?
나는 받은 그 사랑을 두려워하는 이에게 건네는가?
주님,
참새 한 마리까지 헤아리시는 당신을 믿게 하소서.
두려움 한가운데에서도
제가 잊히지 않았음을 기억하게 하시고,
그 자상한 사랑을 두려워하는 이에게 건네게 하소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