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오늘 이 말씀을 거저 주라는 말씀이기도 하지만
받은 것을 나눠주는 그러한 태도로 주라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신앙인이 아닌 사람은 무엇을 줄 때 자기 것을 주듯 주는데
신앙인이라면 그런 태도로 줘서는 안 된다는 말씀인 겁니다.
신앙인은 무엇을 주든 하느님께서 주신 것을 받아서 준다는
그런 자세로 주는데 여기에 우리의 가난과 나눔이 있습니다.
우리의 가난은 없기에 가난한 것이 아니고 있는데도 가난한 것입니다.
사실 신앙인에게 내가 가진 것은 다 내 것이 아니라 하느님 것이고,
전부 다 하느님께서 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나누는 것일 뿐이고,
그래서 자선을 실천할 때나
복음을 선포하러 떠날 때 아무것도 가지고 갈 필요가 없습니다.
“전대에 금도 은도 구리 돈도 지니지 마라.
여행 보따리도 여벌 옷도 신발도 지팡이도 지니지 마라.”
그러니까 이 말씀은 가난과 나눔의 자세를 말하는 것이지만
하느님께 대한 믿음과 의탁의 자세를 말하는 거기도 합니다.
너와 관련해서는 하느님께서 거저 주신 것을 나눈다는 자세이고,
나와 관련해서는 하느님께서 주시는 대로 받아 살아가겠다는 자세입니다.
재물을 움켜쥐고 살지도 않지만 재물에 의존하지도 않겠다는 자세입니다.
그다음에 말씀하시는 평화도 마찬가지입니다.
“집에 들어가면 그 집에 평화를 빈다고 인사하여라.
그 집이 평화를 누리기에 마땅하면 너희의 평화가 그 집에 내리고,
마땅하지 않으면 그 평화가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다.”
오늘 평화와 관련한 말씀을 뜯어 보면 ‘너희의 평화’라는 말이 있고,
그저 ‘평화’라는 말과 ‘그 평화’라는 말이 그 안에 섞여 있습니다.
우리의 평화 또는 우리가 지닌 평화는 내가 만들어냈거나
내 안에서 샘솟은 것이 아니라 빌어 얻는 것입니다.
빌어먹는 것이나 빌어 얻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신앙인답게 또 오늘 주님의 가르침대로 평화를 빕니다! 하고 늘 인사하는데
신앙인이 아닌 사람들은 평화의 인사도 하지 않지만 빈다고 하지도 않지요.
평화란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임을 아는 신앙인만이 그렇게 인사하고 비는 것이지,
보통 사람은 내가 만들어내거나 너와 내가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생각할 뿐입니다.
이것이 ‘세상이 주는 평화’와 다른 ‘주님께서 주시는 평화’입니다.
주시는 하느님이 계시고 받는 우리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평화를 주시는 분은 같은 하느님이시고
그것을 받는 나와 마찬가지로 받는 네가 있을 때 우리 사이에 평화가 있고
내가 주님께 빌어 주는 평화를 그가 거절치 않을 때 평화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빌어줄 때 받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오늘 호세아의 주님을 본받으면 되고 오늘 주님 말씀을 따르면 됩니다.
“나는 타오르는 내 분노대로 행동하지 않고
에프라임을 다시는 멸망시키지 않으리라. 나는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이다.
나는 네 가운데에 있는 ‘거룩한 이’ 분노를 터뜨리며 너에게 다가가지 않으리라.”
“그 집이 평화를 누리기에 마땅하면 너희의 평화가 그 집에 내리고,
마땅하지 않으면 그 평화가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다.
누구든지 너희 말을 듣지 않거든, 너희 발의 먼지를 털어 버려라.”
내가 빌어주는 평화를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화를 낼 것이 아니라
나의 집은 평화 누리기에 마땅한지 먼저 돌아보고 반성할 것이고,
평화 누리기에 마땅하지 않은 그에 대해서는 먼지 털기를 하라는 말씀입니다.
내 축복을 발의 먼지처럼 여기는 그의 태도를 마찬가지로 발의 먼지처럼 여기라는
말씀이자 분노는 티끌만치도 지니 말고 먼지처럼 털어 버리라는 말씀입니다.
나갔다 들어올 때 먼지 털기를 하듯 우리는 분노 털기도 잘해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