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은 7장에서 9장까지의 열 가지 치유 모음의 마무리입니다.
그러니까 마태오복음은 5장에서 6장의 ‘산 위의 가르침’에 이어
갖가지 치유를 통한 구원행위와 업적을 들려준 다음 내일부터는
오늘 복음 끝부분에서 예고한 대로 주님의 복음 선포 여행을 들려줄 것입니다.
이것을 요약 종합하는 말씀이 바로 이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고을과 마을을 두루 다니시면서,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하늘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고쳐주셨다. 그분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예수님의 산상수훈, 질병 치유, 악령 퇴치, 복음 선포 여행,
이 모든 활동을 꿰뚫는 것이 제 생각에 가엾은 마음입니다.
저만해도 가엾은 마음에서 뭐든지 하고
갈수록 가엾은 마음이 진실해지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갈수록 가엾은 마음이 진실해진다고 하는 뜻은 이렇습니다.
전에도 가엾은 마음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불순물들이 있었는데
점차 그 불순물들이 정화되고 순수해졌다는 뜻이 되겠습니다.
저의 경우 제일 문제가 되는 불순물이 바로 교만이랄까 우월감이었습니다.
이 경우 가엾은 사람들은 나의 우월감을 느끼게 해주는 사람들이고,
그래서 그들을 도와줄 때 나의 우월감을 만족시켜 주는 사람들이며,
나의 우월감을 만족시켜 주려면 그는 계속 딱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러니 그가 잘 되어 더 이상 도와줄 필요가 없게 되면
그리고 더 나아가 나와 같거나 나보다 더 잘 되면
내 일처럼 기뻐하는 게 아니라 내 도움받던 게 저리됐다며 은근히 못마땅해합니다.
또 다른 경우는 다른 사람의 더 큰 고통을 보며 내 고통을 위로받는 경우입니다.
올려다보면 불행하게 되고 내려다보면 행복하게 된다는 그 말입니다.
더 고통받고 더 불행한 사람을 보고 가엾어하면서 내 고통과 불행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면서 위로받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 경우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가엾어하심은 당연히 이런 것이 하나도 없는,
참사랑에서 비롯된 구원의 가엾어하심입니다.
그리고 구원의 가엾어하심이기에 단순한 동정심 이상입니다.
예를 들어 병자를 가엾어하심이 그의 병고를 가엾어하심도 있지만
하느님 없이 병고에 시달리는 것이 더 가엾고 진정 가엾은 것이기에
그래서 병고를 통해 오히려 하느님께 데리고 가시려는 가엾어하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님을 닮아서 가엾어하는 마음도 있어야 하지만
가엾어하는 이유도 목적도 구원 때문이어야 합니다.
인간적인 동정심에 국한돼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저는 가엾어하는 마음이 점차 진실해질 뿐 아니라
부담감도 전과 비교하면 그리 많이 느끼지 않고 있습니다.
환자를 제가 치유해주러 갈 필요가 없습니다.
제가 환자를 치유해줄 수 없고 구원해줄 수는 더더욱 없습니다.
그렇지만 주님을 모시고 그들에게 갈 수는 있고,
그들을 주님께 인도할 수는 있습니다.
그들을 구원으로 인도하려는 연민만 있으면 되고,
나머지는 능력과 사랑의 주님께서 하실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