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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는 길에서 길을 만나 길이 되어가는 변화의 여정입니다.

by 이마르첼리노M posted Jul 07,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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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는 길에서 길을 만나 길이 되어가는 변화의 여정입니다.

 

기도는 하루의 어느 한 시간을 하느님께 떼어 드리는 일이 아니라, 나의 하루 전체가 하느님의 숨결을 받아들이는 하나의 긴 호흡이 되는 것이며, 내가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이 아니라 내 안에 머무시는 성령께서 나를 통하여 사랑하시고 용서하시고 위로하시고 기다리시는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느 날 사람들은 내 기도의 시간을 기억하기보다 내 곁에 머물렀을 때 느꼈던 평화와 따뜻함과 자유를 기억하게 되는데, 이것이야말로 성 프란치스코가 말없이 우리에게 보여 준 살아 있는 기도의 모습이며, 토마스 첼라노가 "그는 기도하는 사람이기보다 기도 자체가 되었다."라고 고백한 이유일 것입니다.

 

기도는 입술보다 존재를 바꾸고, 존재보다 관계를 바꾸며, 관계를 통하여 세상을 조금씩 하느님의 나라로 변화시키는 가장 조용하면서도 가장 강력한 하느님의 활동입니다. 그러므로 기도하는 사람은 언제나 사람들 사이에서 드러나기보다, 사람들 안에 숨어 계시는 하느님을 먼저 알아보고, 그 하느님의 숨결을 방해하지 않으려 자신의 자리를 조금씩 비워 갑니다. 그 비움은 패배가 아니라 성령께서 머무실 공간을 마련하는 창조의 시작이며, 자기 존재를 잃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영원으로부터 꿈꾸셨던 참된 자기 자신을 되찾는 가장 깊은 탄생입니다.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자신을 만들어 왔습니다. 사람들의 칭찬으로 자신을 쌓아 올리고, 성공으로 자신을 증명하며, 비교를 통하여 자신의 가치를 확인하고, 인정받기 위하여 더 많이 말하고 더 많이 소유하며 더 많이 보여 주려 애썼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삶은 끝없이 목마른 우물을 파는 일과 같아서 아무리 많은 것을 얻어도 또 다른 결핍이 생기고, 아무리 높은 자리에 올라가도 더 높은 곳을 바라보게 하며, 아무리 많은 사람의 박수를 받아도 홀로 남는 밤이면 자기 존재의 공허함 앞에서 다시 흔들리게 합니다. 거짓 자아는 언제나 자신을 지켜야 하고, 자신을 증명해야 하며, 자신을 방어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프란치스코는 너무도 단순한 한마디로 우리의 모든 가면을 벗겨 냅니다. "인간은 하느님 앞에서 있는 그대로이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이 한 문장은 인간의 모든 허영과 두려움을 녹여 버리는 복음의 불길과 같습니다. 하느님 앞에서는 내가 꾸며 낸 이름도, 내가 얻은 명예도, 내가 숨겨 온 상처도, 내가 자랑해 온 덕행도 모두 내려놓게 됩니다. 오직 사랑받고 있는 한 사람만이 남습니다. 그 사랑 앞에서는 더 이상 커질 필요도 없고, 작아질 필요도 없습니다. 있는 그대로의 내가 이미 하느님의 자비 안에서 받아들여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바로 이 진실 앞에 오래 머무르는 일입니다. 하느님 앞에서 더 이상 변명하지 않고, 더 이상 자신을 미화하지 않으며, 더 이상 자신의 실패를 감추지 않는 것입니다. 내 안의 어둠도, 두려움도, 질투도, 욕망도, 상처도 모두 하느님의 빛 안으로 데려오는 것입니다. 그 빛은 심판하기 위하여 비추는 빛이 아니라 치유하기 위하여 비추는 사랑의 빛입니다. 그 빛 앞에서는 죄책감보다 자비가 먼저 말을 걸고, 절망보다 희망이 먼저 손을 내밀며, 실패보다 새로운 시작이 먼저 우리를 기다립니다.

 

그래서 프란치스코는 평생 같은 질문을 품고 살았습니다. "나의 하느님, 당신은 누구십니까? 그리고 저는 누구입니까?" 이 질문은 지식을 얻기 위한 질문이 아니라 사랑을 깊게 하기 위한 질문이었습니다. 당신을 더 알아 갈수록 나는 더 작아지고, 내가 더 작아질수록 당신의 사랑은 더욱 커졌으며, 당신의 사랑이 커질수록 나는 비로소 나 자신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내가 누구인지를 아는 길은 나를 오래 바라보는 데 있지 않고, 하느님의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데 있음을 그는 십자가 아래에서 배웠습니다.

 

십자가는 프란치스코에게 실패의 나무가 아니라 거짓 자아가 무너지는 자리였습니다. 자신의 힘으로 하느님께 올라가려던 모든 욕망이 그리스도의 내어 주심 앞에서 녹아내렸고, 세상을 얻으려던 마음은 모든 것을 내어 주시는 사랑 앞에서 침묵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그곳에서 처음으로 하느님의 연민을 보았고, 자신이 얼마나 사랑받고 있었는지를 깨달았습니다. 그 순간부터 그의 삶은 자기중심의 원을 떠나 하느님 중심의 원 안으로 들어갔고, 자신의 행복을 붙잡으려던 손은 형제를 붙드는 손으로 바뀌었습니다.

 

기도는 사람을 세상에서 떼어 놓지 않습니다. 오히려 세상 한가운데로 더 깊이 보내 줍니다. 기도가 깊어질수록 사람은 사람을 피하지 않고, 상처 입은 이를 외면하지 않으며, 미워하는 사람조차도 하느님의 시선으로 바라보려 애씁니다. 기도는 하느님께 가까이 가는 기술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사람들에게 가까이 가시도록 나를 내어 드리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기도는 말이 아니라 눈빛이 되고, 침묵이 되고, 기다림이 되며, 용서가 되고, 누군가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 주는 귀가 되고, 울고 있는 사람 곁에 아무 말 없이 함께 앉아 있는 시간이 됩니다. 하느님의 영은 언제나 그렇게 조용히 활동하십니다. 바람처럼 지나가지만 생명을 남기고, 햇살처럼 스며들지만 따뜻함을 남기며, 물처럼 낮은 곳으로 흘러가지만 메마른 생명을 다시 일으켜 세우십니다.

 

성령의 거룩한 활동은 특별한 기적보다 먼저 관계 안에서 드러납니다. 섣부른 판단보다 누군가를 이해하려는 마음이 생길 때, 먼저 사과할 용기가 생길 때, 용서할 이유보다 용서해야 할 사랑이 더 크게 보일 때, 경쟁보다 함께 살아가는 기쁨이 커질 때, 나보다 다른 사람의 기쁨을 더 진심으로 축복할 수 있을 때, 우리는 이미 성령의 숨결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더 이상 기도를 하는 사람이 아니라 기도를 살아가는 사람이 됩니다. 우리의 심장은 하느님의 자비를 펌프질하는 심장이 되고, 우리의 눈은 그리스도의 연민을 비추는 창이 되며, 우리의 손은 성령께서 세상을 어루만지시는 손이 되고, 우리의 발은 평화를 심으시는 하느님의 발걸음이 됩니다. 그러면 우리의 존재는 말보다 먼저 복음을 전하고, 우리의 침묵은 설교보다 깊은 울림이 되며, 우리의 작은 친절 하나는 세상이 미처 알지 못하는 하느님 나라를 지금 여기로 옮겨놓습니다.

 

기도는 하느님께 무엇을 청하는 시간이 아니라, 복음에서 말씀의 통치를 받아들여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서 계속 살아가시도록 우리의 존재를 내어 드리는 시간이며, 사랑의 순명으로 도구적 존재로 새로 태어나는 시간입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하루는 성령의 호흡으로 시작되고 성령의 호흡으로 끝나며, 우리의 모든 만남은 육화하시는 말씀의 자리로 변하고, 우리의 삶 전체는 하느님의 거룩한 영과 그 영의 거룩한 활동이 세상 안에서 계속 이어지는 살아 있는 성전이 됩니다. 그리고 그때 비로소 사람들은 우리를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통하여 지나가신 하느님의 따뜻한 숨결을 기억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프란치스코가 남긴 가장 아름다운 기도이며, 오늘도 모든 작은 형제와 자매가 자신의 삶으로 이어 써야 할 끝나지 않는 복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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