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 9,18-26
오늘 복음은 두 이야기가 서로 얽혀 있습니다.
죽은 딸을 살려 달라는 회당장의 간청과,
그 길 위에서 옷자락에 손을 댄 여인의 이야기입니다.
두 사람 모두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믿음’으로 주님께 다가갑니다.
오리게네스는
이 여인의 ‘손길’에 깊이 주목합니다.
그는 어마어마한 일을 청하지 않습니다.
그저 옷자락 술, 곧 옷의 가장 끄트머리에
가만히 손을 댈 뿐입니다.
그러나 그 작은 손길이
열두 해의 병을 낫게 합니다.
오리게네스는 말합니다.
믿음으로 그리스도께 닿는 손길은
아무리 작아도 결코 헛되지 않다고.
주님의 능력은
그 옷자락 끝에서도 흘러나옵니다.
주님께서는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십니다.
그 여인을 고친 것은
마술 같은 접촉이 아니라
그 손길에 담긴 믿음이었습니다.
오리게네스는 이를
말씀을 만지는 우리의 모습으로 읽습니다.
거룩한 독서 가운데
믿음으로 한 구절에 손을 댈 때,
그 말씀에서 치유의 힘이 우리에게 흘러듭니다.
이어 주님께서는 회당장의 집에 가시어
“저 소녀는 죽은 것이 아니라 자고 있다” 하십니다.
사람들은 비웃지만,
주님께는 죽음조차 잠일 뿐입니다.
오리게네스는 이 소녀를
죄와 절망에 ‘죽은 듯’ 누운 영혼으로 읽습니다.
주님께서 그 손을 잡아 일으키시듯,
그분은 죽은 듯한 우리 영혼도
당신 손길로 다시 일으키십니다.
돌봄 주간의 관점에서 보면
주님께서는
열두 해 지친 여인에게 “딸아” 하고 부르시고,
죽은 듯한 소녀의 손을 친히 잡으십니다.
돌봄이란 이렇게
지치고 꺼져 가는 것 곁에 다가가 손을 내미는 일입니다.
먼저 그분의 손길에 닿은 우리가,
이제 누군가에게 그 손을 내밉니다.
오늘 우리는 조용히 묻습니다.
나는 내 약함을 들고 그분께 손을 내미는가?
나는 작은 믿음의 손길조차 헛되지 않음을 믿는가?
나는 말씀의 옷자락에 가만히 손을 대고 있는가?
나는 죽은 듯 지친 이의 손을 잡아 주는가?
주님,
제 약함을 들고 당신 옷자락에 손을 내밀게 하소서.
그 작은 믿음의 손길에
당신의 회복이 흘러들게 하시고,
저 또한 지친 이의 손을 잡아 일으키게 하소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