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 11,25-30
오늘 복음은
지친 이들에게 건네시는 가장 따뜻한 초대입니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주님께서는 짐을 더 얹지 않으시고,
도리어 그 짐을 들고 당신께 오라 부르십니다.
성 예로니모는
먼저 ‘철부지들에게 드러내 보이신다’는 말씀에 주목합니다.
하느님의 신비는
스스로 지혜롭다 여기는 교만한 마음에는 닫혀 있고,
어린아이처럼 자신을 비운 겸손한 마음에는 열립니다.
그러기에 안식으로 가는 첫걸음은
‘내가 다 안다, 내가 다 할 수 있다’는 무거운 자만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예로니모는 또
‘멍에’라는 말을 깊이 헤아립니다.
멍에란 본래 무거운 것인데,
주님께서는 당신 멍에가 ‘편하고 가볍다’ 하십니다.
그것은 율법학자들이 지운 짐,
곧 율법주의와 죄의 무거운 멍에가 아니라,
사랑으로 메는 멍에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이를 위해 지는 짐은
같은 무게라도 가볍게 느껴집니다.
주님의 멍에는
억지로 끄는 노역이 아니라,
온유하고 겸손하신 그분과 ‘함께’ 메는 멍에입니다.
주님께서 약속하신 안식은
일을 멈추는 게으름이 아닙니다.
그것은 가장 깊은 곳의 쉼,
곧 ‘나는 사랑받고 있다’는 신뢰에서 오는 평화입니다.
그 안식이 있을 때,
우리는 같은 일을 하면서도 짓눌리지 않고,
도리어 그 일을 사랑으로 감당하게 됩니다.
돌봄 주간의 관점에서 보면
우리는 먼저
‘돌보아 주시는’ 주님의 손길 아래로 들어가야 합니다.
내가 다 짊어지려는 마음을 내려놓고
그분께 안길 때,
비로소 나 자신과 이웃을 돌볼 힘도 솟아납니다.
돌봄은 받는 데서 시작됩니다.
오늘 우리는 조용히 묻습니다.
나는 어떤 무거운 짐을 홀로 지고 있는가?
나는 ‘다 안다, 다 할 수 있다’는 자만을 내려놓는가?
나는 그 짐을 들고 “나에게 오너라” 하시는 분께 가는가?
나는 먼저 그분의 돌봄을 받아 쉴 줄 아는가?
주님,
무거운 짐을 홀로 지려는 자만을 내려놓게 하소서.
그 짐을 들고 당신께 나아가
당신과 함께 메는 가벼운 멍에를 배우게 하시고,
당신의 안식 안에서 저와 이웃을 돌보게 하소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