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 9,14-17
요한의 제자들은
‘왜 단식하지 않느냐’고 묻습니다.
그것은 경건의 잣대를 들이대는 물음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대답은 뜻밖에도 ‘혼인 잔치’입니다.
“신랑과 함께 있는데 어찌 슬퍼하겠느냐?”
성 암브로시오는
이 ‘신랑’이 바로 그리스도이심을 봅니다.
신랑께서 우리 가운데 와 계시니,
지금은 무엇보다 기쁨의 때입니다.
그리스도인의 단식과 절제도
우울이나 자기 학대가 아니라,
신랑을 더 깊이 사랑하기 위한 기쁨의 준비입니다.
암브로시오에게 신앙의 바탕은
두려움이 아니라 혼인 잔치의 기쁨입니다.
이어서 주님께서는
새 천과 헌 옷, 새 포도주와 헌 부대를 말씀하십니다.
복음의 새 포도주는
낡은 마음의 부대에 담기지 않습니다.
옛 습관과 굳은 틀에 그대로 부으면
부대도 터지고 포도주도 쏟아집니다.
암브로시오는 여기서
은총의 ‘새로움’을 봅니다.
그리스도께서 부어 주시는 새 생명은
새롭게 빚어진 유연한 마음을 요구합니다.
‘새 부대’가 된다는 것은
옛것을 무조건 버리는 일이 아니라,
성령께서 부어 주시는 새 포도주를
담아낼 만큼 마음을 비우고 넓히는 일입니다.
굳어 있던 편견과 두려움을 비울 때,
그 자리에 사랑과 기쁨의 새 포도주가 채워집니다.
이웃종교·생태의 관점에서 보면
창조 세계를 돌보라는 오늘의 부름도
‘새 포도주’와 같습니다.
낡은 사고의 부대로는 담을 수 없습니다.
이웃과 이웃 종교, 모든 피조물과 함께
새롭게 살아가려는 마음 ―
그 새 부대 안에서 평화의 포도주가 보존됩니다.
오늘 우리는 조용히 묻습니다.
나의 신앙은 두려움인가, 혼인 잔치의 기쁨인가?
나는 새 포도주를 낡은 부대에 담으려 하지는 않는가?
나는 굳은 편견과 습관을 비워 마음을 새롭게 하는가?
나는 창조 세계를 향한 새로운 사랑에 마음을 여는가?
주님,
신랑이신 당신과 함께하는 기쁨을 누리게 하소서.
낡은 마음의 부대를 비우시어
당신의 새 포도주를 담을 새 부대가 되게 하시고,
그 새로움으로 이웃과 온 피조물을 사랑하게 하소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