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죄와 용서의 권한은 하느님께만 있다는 것이 구약의 믿음이자 우리 믿음입니다.
다시 말해서 묶고 푸는 권한이 하느님께만 있다는 것입니다.
그 반대를 한번 생각해보면 좋을 것입니다.
단죄도 용서도 인간의 권한이지 하느님은 상관이 없다고 무신론자들은 얘기합니다.
그러나 우리 신앙인은 이것이 하느님의 권한을 인간이 빼앗는 것이거나
인간이 하느님의 위치로 감히 올라가려고 드는 무도함이라고 생각하고,
인간은 그저 인간일 뿐 같은 인간에게 심판과 용서의 권한이 없다고 믿습니다.
그렇지만 오늘 주님께서는 그 권한이 사람의 아들인 당신에게 있다고 말씀하시고,
마태오복음은 그 권한이 점점 확장되어 사람의 아들들인 우리게도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군중들은 한편으로는 두려워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하느님을 찬양합니다.
이 일을 보고 군중들은 두려워하며
사람들에게 그러한 권한을 주신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사람이 자기에게 죄지은 사람을 용서해주는 것은 두려워할 일도
용서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진 것 때문에 하느님을 찬양할 일도 아닙니다.
그러나 남의 죄까지 용서해주는 것은 하느님께만 유보된 권한 밖의 일이고,
그래서 16장에서는 예수께서 하느님의 아들임을 고백한 베드로에게
당신 교회의 반석이라는 이름과 함께 처음으로 주어진 권한입니다.
그리고 18장에서는 마침내 보통 사람인 우리에게도 용서의 권한이 주어집니다.
너희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너희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그러니까 마태오복음 전체를 놓고 볼 때 심판은 우리에게 여전히 불허되고,
용서는 이제 우리도 할 수 있고 해야 할 것으로 확장하여 허용된 것입니다.
심판은 No! 용서는 Yes입니다.
이것이 심판과 용서와 관련하여 머리로 아는 가르침의 내용인데
실제는 곧 이와 관련한 실제의 실천은 어떻습니까?
그래서 그 반대인 경우가 많지 않은지,
곧 하지 말아야 할 심판은 자주 하고 해야 할 용서는 겨우 하는 내가 아닌지,
다시 말해서 하느님께 유보된 권한 침범은 너무도 쉽게 하고
이웃에게 하라는 용서는 하지 않는 내가 아닌지 돌아보는 오늘 우리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