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샘에서 흘러나오는 노래
“생명의 샘이 진정 당신께 있고 우리는 당신 빛으로 빛을 보옵나이다.”
(시편 36편 9절)
생명의 샘에서 흘러나오는 노래 (비 오는 날에 부르는 생명의 노래)
거대한 대지의 숨결을 따라 흐르는 물줄기가 온 땅의 핏줄이 되어 산과 들을 적셔 갈 때, 세상은 오랫동안 품고 있던 침묵을 풀어 놓고 저마다의 목소리로 생명의 노래를 시작합니다. 한 방울의 물은 강이 되고, 강은 바다가 되며, 바다는 다시 하늘로 올라가 비가 되어 돌아오는 그 끝없는 순환 안에서 창조는 단 한 순간도 멈춘 적이 없습니다. 하느님의 숨결은 언제나 그렇게 흘러갑니다. 멈추어 소유하지 않고, 자신을 비워 모두에게 내어 주며, 가장 낮은 곳으로 흘러가 메마른 땅을 적시고 죽어 가는 생명을 다시 일으켜 세웁니다.
한 톨의 씨앗이 어두운 흙 속에서 자기 몸을 찢으며 여린 초록의 손을 내미는 순간, 그것은 단순한 발아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온전히 내어 주는 사랑의 신비입니다. 씨앗은 살아남기 위해 단단한 껍질을 붙드는 것이 아니라, 열매 맺기 위해 자신의 형체를 잃습니다. 죽음처럼 보이는 그 허용과 내려놓음이야말로 생명이 시작되는 자리이며, 모든 창조가 다시 태어나는 문입니다. 그러므로 대지는 죽음을 품는 곳이 아니라 생명을 잉태하는 거룩한 자궁이며, 흙은 우리에게 사라짐이 끝이 아니라 사랑으로 흘러가는 또 다른 시작임을 조용히 가르쳐 줍니다.
우리는 살아가며 이 거대한 생명의 샘을 자주 잊습니다. 더 많이 가지려 하고, 더 높이 오르려 하며, 더 크게 보이려는 욕망 속에서 생명은 경쟁으로 오해되고 사랑은 소유로 변질됩니다. 그러나 자연은 단 한 번도 그렇게 살아본 적이 없습니다. 숲은 서로를 밀어내지 않습니다. 나무들은 같은 빛을 나누고 같은 바람을 마시며 같은 비를 받아들입니다. 큰 나무는 그늘을 만들어 어린 나무를 품고, 낙엽은 썩어 다시 뿌리의 양식이 되며, 마른 가지조차 작은 생명들의 집이 되어 자신의 마지막까지 내어 줍니다. 창조 세계는 처음부터 끝까지 서로를 살리는 관계의 복음으로 살아갑니다.
이른 새벽 숲을 채우는 미루나무 잎사귀의 사각거림과 이름 모를 새들의 맑은 지저귐은 모두 생명의 샘에서 길어 올린 투명한 찬미입니다. 바람은 보이지 않지만 나뭇잎을 흔들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빛은 소리를 내지 않지만 모든 꽃의 얼굴을 피워 냅니다. 강물은 한 번도 자신을 위해 흐르지 않았고, 태양은 누구를 차별하여 비추지 않았으며, 구름은 누구의 밭인지 묻지 않고 비를 내립니다. 창조는 처음부터 무상의 사랑으로 움직이는 하느님의 성품을 그대로 닮아 있습니다.
생명의 원천은 언제나 깊은 중심에 머물러 있습니다. 눈에 띄는 화려함보다 보이지 않는 뿌리에서, 떠들썩한 성공보다 침묵 속의 충실함에서, 높은 곳보다 낮은 자리에서 조용히 세상을 살려 냅니다. 나무는 뿌리가 깊을수록 더 높이 자라고, 강은 낮은 곳으로 흐를수록 더 많은 생명을 품으며, 사람은 자신을 비울수록 더 많은 사랑을 담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하느님 나라의 질서이며 복음의 방향입니다.
성 프란치스코는 이 비밀을 누구보다 먼저 알아보았습니다. 그는 해를 형제라 불렀고 달을 자매라 불렀으며, 바람과 물과 불과 흙을 한 가족이라 불렀습니다. 그것은 아름다운 시적 표현이 아니라 존재의 진실을 본 사람의 고백이었습니다. 모든 피조물은 하나의 생명에서 태어났고, 하나의 사랑 안에서 살아가며, 하나의 찬미를 부르기 위해 존재한다는 사실을 그는 온몸으로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가장 작은 풀잎도 함부로 꺾지 않았고, 가장 작은 새 한 마리에게도 형제라 불렀으며, 가난을 가장 아름다운 신부라 노래했습니다. 자기 자신을 비울수록 세상은 더 깊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음을 그는 알았기 때문입니다.
우리 또한 그 생명의 강가에 서 있습니다. 서로를 귀하게 바라보는 따뜻한 눈빛 하나, 먼저 용서하는 작은 용기 하나, 기다려 주는 침묵 하나, 상처 입은 이를 품어 주는 손길 하나가 모두 생명의 샘에서 흘러나오는 맑은 물줄기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우리의 일상 속 작은 친절과 자비를 통하여 오늘도 세상으로 흘러갑니다. 관계 안에서 선이 흐르기 시작할 때, 하느님 나라는 이미 우리 가운데 와 있으며, 우리는 그 나라를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길가에 무심히 피어난 들꽃 한 송이도, 굽이굽이 흘러가는 푸른 강물도, 바람을 따라 흔들리는 한 포기의 풀도, 그리고 그 모든 풍경 앞에서 깊은 숨을 쉬는 우리 자신도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의 생명에서 태어난 형제요 자매이며, 하나의 사랑을 나누기 위해 이 세상에 보내진 존재들입니다. 별들은 밤을 밝히기 위해 빛나고, 꽃은 자신을 자랑하기 위해 피는 것이 아니라 향기를 내어 주기 위해 피어납니다. 사람 또한 사랑받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사랑을 흘려보내기 위해 존재합니다.
그러므로 참된 신앙은 더 많은 것을 소유하는 일이 아니라 더 깊이 흘러가는 일입니다. 더 높아지는 일이 아니라 더 낮아지는 일이며, 더 강해지는 일이 아니라 더 투명해지는 일입니다. 생명의 샘은 언제나 가장 깊고 가장 낮은 곳에서 솟아오르기 때문입니다. 그 샘을 마시는 사람은 누구나 다시 하나의 샘이 되어 메마른 세상으로 흘러갑니다.
오늘도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숨결은 대지를 지나 비가 되어 우리의 심장까지 흘러들어 옵니다. 그 숨결이 우리 안에서 사랑이 되고 자비가 되며 평화가 되어 다시 세상으로 흘러갈 때, 우리의 삶 전체는 더 이상 혼자의 노래가 아니라 창조 전체가 함께 부르는 거대한 찬미가가 됩니다. 그때 우리는 비로소 알게 됩니다. 생명의 원천은 멀리 있는 하늘이 아니라, 사랑을 내어 주는 모든 관계의 중심에서 지금도 쉼 없이 솟아오르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샘에서 흘러나오는 한 줄기 맑은 물이 오늘도 온 세상을 살아 있게 하고, 우리 또한 그 거룩한 흐름 안에서 영원히 살아가는 존재임을 다시 일깨워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