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 8,23-27
같은 배에 주님과 제자들이 함께 타고 있습니다.
그런데 풍랑이 일자
제자들은 두려움에 사로잡히고,
주님께서는 평화로이 주무십니다.
같은 폭풍이지만
한쪽은 공포이고 다른 쪽은 평화입니다.
그 차이는 ‘믿음’에서 옵니다.
성 대 바실리오는
창조를 묵상한 교부답게,
바람과 물을 꾸짖어 잠재우시는 그분이
바로 태초에 그 물과 바람을 지으신 분이심을 봅니다.
제자들이 “이분이 어떤 분이시기에”라고 물을 때,
그 답은 이미 드러나 있습니다.
창조주만이 피조물에게 명령하실 수 있습니다.
바실리오는 또
태초에 혼돈의 물 위를 감돌던 성령을 기억합니다.
질서와 생명을 부르신 그 성령께서
지금도 우리 안의 혼돈을 잠재우십니다.
“왜 겁을 내느냐, 이 믿음이 약한 자들아!”
주님의 이 말씀은 꾸중이라기보다
일깨움입니다.
두려움은 ‘주님께서 주무신다’,
곧 안 계시거나 무관심하시다는 착각에서 옵니다.
그러나 주님은
바로 그 배 안에,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바실리오에게 믿음이란
폭풍이 없으리라는 보장이 아니라,
폭풍 속에도 그분이 함께 계심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일어나 “꾸짖으시니 아주 고요해졌다”고 합니다.
바깥 호수의 고요는
곧 우리 안에서 일어나야 할 고요의 표징입니다.
성시간이란 바로
내 마음의 풍랑을 주님 앞에 들고 가
“잔잔하여라”는 그분의 말씀을 듣는 시간입니다.
성령께서 그 한마디로
우리 안에 깊은 평화를 부으십니다.
사랑·기쁨 주간의 관점에서 보면
두려움과 기쁨은 함께 살 수 없습니다.
두려움은 마음을 움켜쥐게 하지만,
주님께서 함께 계심을 믿는 사랑은
그 두려움을 몰아냅니다.
폭풍이 멎어서 기쁜 것이 아니라,
폭풍 속에도 그분이 곁에 계셔서 기쁜 것 ―
그것이 환경을 초월한 내면의 기쁨입니다.
오늘 우리는 조용히 묻습니다.
나는 어떤 풍랑 앞에서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는가?
나는 주님께서 ‘주무신다’고 느끼며 혼자라고 여기지 않는가?
나는 그 풍랑을 주님 앞에 들고 가 “잔잔하여라”를 듣는가?
나는 폭풍 속에서도 함께 계신 그분을 신뢰하는가?
주님,
제 마음의 풍랑 한가운데에서 당신을 깨워 부릅니다.
“왜 겁을 내느냐?” 하시는 당신 음성을 듣게 하시고,
성령의 “잔잔하여라” 한마디로
제 안에 깊은 평화를 부어 주소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