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 8,5–17
오늘 복음의 주인공은
뜻밖에도 한 이방인, 곧 로마 군대의 백인대장입니다.
그는 선택된 백성 밖에 있는 사람이었지만,
주님께서는 그의 믿음을 보시고 감탄하십니다.
“나는 이스라엘의 그 누구에게서도
이런 믿음을 본 일이 없다.”
성 암브로시오는
이 백인대장의 겸손과 믿음에 주목합니다.
그는 권력을 쥔 군인이었지만
“저는 주님을 제 지붕 아래로 모실 자격이 없습니다.” 하고 낮춥니다.
그러면서도 “한 말씀만 해 주십시오.” 하며
주님 말씀의 권능을 온전히 믿습니다.
암브로시오는 이 겸손과 신뢰야말로
참믿음의 모습이라고 봅니다.
교회는 이 백인대장의 고백을 너무도 소중히 여겨,
미사 때마다 영성체에 앞서
“주님, 제 안에 주님을 모시기에 합당치 않으나
한 말씀만 하소서.” 하고 그의 말을 되풀이합니다.
암브로시오는 또
‘동쪽과 서쪽에서 온 많은 사람’에 주목합니다.
하느님의 잔칫상은
한 민족, 한 울타리 안에 갇혀 있지 않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의 식탁에
온 세상의 낯선 이들이 함께 둘러앉습니다.
정작 위험한 것은
‘우리는 안에 있다’는 자만에 빠져
스스로 바깥 어둠을 택하는 일입니다.
믿음은 혈통이나 소속이 아니라
마음의 겸손과 신뢰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이어 주님께서는
베드로의 장모와 수많은 병자를 고치시며,
“우리의 병약함을 떠맡고 질병을 짊어지셨다”는
이사야의 말씀을 이루십니다.
주님은 멀리서 명령만 내리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의 아픔을 당신 어깨에 짊어지시는 분이십니다.
이방인의 종도, 베드로의 장모도, 저녁의 병자들도
그 자비의 손길 아래 하나가 됩니다.
평화/인내 주간의 관점에서 보면
오늘 복음은
평화의 식탁이 얼마나 넓은지를 보여 줍니다.
동쪽과 서쪽, 안과 밖, 이 종교와 저 민족을 넘어
겸손히 믿는 모든 이가 한자리에 초대됩니다.
이웃의 진실한 신앙 앞에서 겸손히 배우는 것,
그것이 갈라진 세상에 평화를 여는 길입니다.
오늘 우리는 조용히 묻습니다.
나는 ‘우리는 안에 있다’는 자만에 빠져 있지는 않은가?
나는 이웃 종교와 낯선 이의 신앙 앞에서 겸손히 배우는가?
나는 백인대장처럼 ‘한 말씀’을 온전히 신뢰하는가?
나는 아픔을 짊어지신 주님을 닮아 이웃의 아픔을 나누는가?
주님,
저를 제 울타리 안에 가두지 않게 하소서.
동쪽과 서쪽에서 오는 모든 이를 형제로 맞이하게 하시고,
백인대장의 겸손과 믿음을 닮게 하소서.
우리의 병약함을 짊어지신 당신처럼
이웃의 아픔을 함께 지게 하소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