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 충실성의 함정과 하느님 안에서 누리는 자유
하느님 나라와 내 왕국, 공존할수 없는 나라 그러므로 이중 충실성은 함정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산상설교에서 매우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마태 6,24) 하느님 나라와 내 왕국은 적당히 타협하며 공존할 수 있는 두 체제가 아닙니다. 하느님 나라는 하느님의 통치를 받아들이는 삶이고, 내 왕국은 내가 통치자가 되어 살아가는 삶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말씀을 기준으로 삼지만, 내 왕국은 욕망과 두려움과 자기보호를 기준으로 삼습니다. 하느님 나라는 내어줌으로 성장하지만, 내 왕국은 움켜쥠으로 유지됩니다. 하느님 나라는 관계를 살리지만, 내 왕국은 관계마저 자신의 목적을 위해 이용하려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둘 사이를 오가며 살아가는 이중충실성의 위험을 경고하십니다. 겉으로는 하느님을 따르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자신의 욕망을 섬기고, 입술로는 하느님 나라를 말하지만, 실제로는 자기 왕국의 확장을 위해 신앙을 이용하는 것, 이것이 가장 교묘한 함정입니다.
이중충실성의 특징은 겉으로 보기에는 신앙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데 있습니다. 기도도 하고, 봉사도 하고, 공동체 생활도 하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는 여전히 "내 뜻이 이루어지기를" "내가 인정받기를" "내가 중심이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중충실성은 죄보다도 더 알아차리기 어려운 영적 유혹입니다. 성 프란치스코는 이 함정을 누구보다 잘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가난을 단순히 물질의 문제가 아니라 주권의 문제로 보았습니다. 무엇을 소유하느냐보다 누가 내 삶의 주인이냐가 더 중요했습니다.
프란치스칸 내적 가난은 내 왕국의 왕좌에서 내려오는 것입니다. 내가 중심이 되는 삶에서 물러나 하느님께 자리를 내어 드리는 것입니다. 그때 비로소 관계 안에 선이 흐르기 시작합니다. 내가 옳음을 증명하려 하기보다 진리를 찾게 되고, 내가 이기려 하기보다 함께 살아나는 길을 찾게 되며, 내가 높아지려 하기보다 상대가 꽃피기를 바라게 됩니다. 사실 하느님 나라와 내 왕국의 싸움은 거대한 역사 속에서만 벌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매일의 관계 안에서 벌어집니다. 내 말이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때, 누군가가 나보다 더 인정받을 때, 억울함을 느낄 때, 용서해야 할 때, 기다려 주어야 할 때, 그 순간마다 두 나라가 우리 안에서 만납니다. "내가 주인인가?" "하느님이 주인인가?" 그 선택의 순간이 바로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온 순간입니다. 그래서 회개란 단순히 잘못을 뉘우치는 것이라기보다 내 왕국에서 하느님 나라로 시민권을 옮기는 것입니다.
복음적 삶은 내 왕국이 점점 커지는 데 있지 않고, 내 왕국이 사라지는 자리에서, 하느님의 통치가 관계 안에 흐르는 것을 바라보는 데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비로소 이렇게 고백하게 됩니다. 나의 보물은 더 이상 내가 아닙니다. 나의 보물은 하느님의 나라입니다. 그래서 내가 빛나기보다 형제가 빛나는 것이 기쁘고, 내 이름이 알려지기보다 하느님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는 것이 기쁩니다. 하느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곳마다 내 왕국은 사라지지만, 바로 그 사라짐 안에서 나는 가장 자유로운 사람이 됩니다.
하느님의 함께계심 안에서 누리는 자유야말로 하느님 나라의 실질적인 내용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 (루카 17,21) 또한 "보라, 하느님의 거처는 사람들 가운데에 있다." (묵시 21,3) 하느님 나라의 가장 깊은 실질은 하느님의 함께 계심(임마누엘)입니다. 그리고 그 함께 계심이 우리 안에서 만들어 내는 열매가 바로 자유입니다. 내 왕국 안에서는 자유가 없습니다. 인정받아야 한다는 압박, 성공해야 한다는 두려움, 비교와 경쟁, 상처받지 않으려는 방어, 내 뜻대로 되어야 한다는 집착, 잃어버릴까 두려워하는 불안이 끊임없이 우리를 묶어 둡니다. 겉으로는 자유로운 것 같지만 사실은 수많은 욕망과 두려움의 노예로 살아갑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함께 계심을 믿는 사람은 다릅니다. 모든 것을 소유하지 않아도 괜찮고, 모든 사람에게 인정받지 않아도 괜찮고, 결과를 통제하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존재 이유를 성취나 성공이 아니라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발견하기 때문입니다. 성 프란치스코가 누렸던 자유도 바로 이런 자유였습니다. 가난했지만 가난에 묶이지 않았고, 비난받았지만 비난에 사로잡히지 않았으며, 병들고 약해졌지만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기쁨은 환경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나와 함께 계신다." 는 확신에서 나왔습니다. 그래서 프란치스코의 가난은 결핍이 아니라 자유였고, 겸손은 자기 비하가 아니라 해방이었으며, 순명은 억압이 아니라 사랑 안에서의 신뢰였습니다.
하느님의 함께 계심 안에서 누리는 자유는 관계 안에서 더욱 구체적으로 드러납니다. 상대를 통제하려 하지 않는 자유, 상대를 내 뜻대로 만들려 하지 않는 자유, 상대가 나보다 빛나도 기뻐할 수 있는 자유, 용서할 수 있는 자유, 기다려 줄 수 있는 자유, 내가 옳다는 것을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 사랑받기 위해 애쓰지 않아도 이미 사랑받고 있음을 아는 자유입니다. 이 자유가 바로 하느님 나라의 향기입니다. 그래서 하느님 나라의 실질적인 내용은 단순히 평화나 기쁨이 아닙니다. 그 모든 것의 뿌리는 하느님의 현존입니다.
하느님께서 함께 계시기에 평화가 있고, 하느님께서 함께 계시기에 기쁨이 있으며, 하느님께서 함께 계시기에 자유가 있습니다. 결국 하느님 나라는 하느님께서 나와 함께 계신다는 사실을 믿고, 그 현존 안에서 더 이상 자신을 지키기 위해 애쓰지 않아도 되는 자유의 삶입니다. 그 자유 안에서 사람은 비로소 자기 왕국의 왕좌에서 내려와 하느님의 통치를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리고 그때 삶은 이렇게 고백하게 됩니다. 하느님 나라란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을 가지는 나라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함께 계심으로 더 이상 아무것에도 매이지 않는 자유를 누리는 나라입니다. 그 자유 안에서 나는 형제를 사랑할 수 있고, 기다릴 수 있고, 내어줄 수 있으며, 기뻐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함께 계시는 곳, 바로 그곳이 하느님 나라입니다.
하느님나라를 보물로 여기는 사람은 나를 묶어놓는 다섯가지, 즉 포장, 증명, 자랑, 비교 경쟁은 어느새 흔적도 없이 사라집니다. 하느님 나라가 보물이 되기 전까지 우리는 끊임없이 자신을 만들어 냅니다. 있는 그대로의 나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하기에 자신을 포장하고,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기 위해 끊임없이 증명하려 하고, 조금이라도 높아 보이기 위해 자랑하며, 타인과 비교하고, 뒤처지지 않기 위해 경쟁합니다. 그러나 이 다섯 가지는 사실 자유의 모습이 아니라 두려움의 모습입니다. 사랑받지 못할까 두려워서 포장하고, 존재 가치가 부족할까 두려워서 증명하며, 열등해 보일까 두려워서 자랑하고, 불안하기에 비교하며, 버려질까 두려워 경쟁합니다. 이 모든 것의 중심에는 내 왕국을 지키려는 불안이 숨어 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 나라가 보물이 되면 상황은 달라집니다. 하느님께서 나를 이미 알고 계시고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믿게 되면 더 이상 포장할 이유가 없습니다. 하느님께서 나를 자녀로 받아들이셨다면 자신을 증명할 이유도 없습니다. 모든 좋은 것이 은총임을 알게 되면 자랑할 것도 없습니다. 각 사람에게 허락된 길이 다름을 알게 되면 비교할 이유도 없습니다. 형제를 경쟁자가 아니라 선물로 보게 되면 경쟁할 이유도 없습니다. 그래서 하느님 나라를 발견한 사람에게서 포장은 진실함으로, 증명은 신뢰로, 자랑은 감사로, 비교는 존중으로, 경쟁은 형제애로 바뀌어 갑니다.
성프란치스코가 보여 준 삶도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을 포장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약함과 한계를 숨기지 않았습니다. 자신을 증명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하느님께 사랑받는 작은 형제로 사는 것만으로 충분했습니다. 자랑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모든 선은 하느님께 속한다고 고백했습니다. 비교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피조물을 형제와 자매로 불렀습니다. 경쟁하지 않았습니다. 누군가가 빛나는 것을 함께 기뻐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 나라를 보물로 여기는 사람은 어느 날 문득 깨닫게 됩니다. "예전에는 나를 지키기 위해 그렇게 애썼는데..." "예전에는 인정받으려고 그렇게 힘들어했는데..." "예전에는 늘 비교하며 살았는데..." 그것들이 어느새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음을 발견합니다. 마치 해가 떠오르면 어둠이 사라지듯, 하느님 나라가 마음의 중심에 들어오면 포장, 증명, 자랑, 비교, 경쟁은 애써 버려야 할 짐이 아니라 빛 앞에서 저절로 사라지는 그림자가 됩니다. 그 자리에 남는 것은 단 하나입니다. 하느님께서 함께 계신다는 기쁨과 자유. 그리고 그 자유 안에서 나는 나로 충분하고, 형제는 형제로 충분하며, 하느님만이 모든 영광을 받으시는 삶. 그것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보물을 발견한 사람의 모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