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 6,19–23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자신을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마라.
거기에서는 좀과 녹이 망가뜨리고
도둑들이 뚫고 들어와 훔쳐 간다.
그러므로 너희는 자신을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라.
거기에서는 좀도 녹도 망가뜨리지 못하고
도둑들이 뚫고 들어오지도 못하며 훔쳐 가지도 못한다.”
그리고 이어
“네 보물이 있는 곳에 네 마음도 있다” 하시며
“눈은 몸의 등불”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단지 돈을 많이 모으지 말라는 훈계에 머물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삶의 중심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를 묻고 계십니다.
무엇을 가장 소중히 여기고,
무엇을 잃을까 두려워하며,
무엇을 위해 시간과 힘을 쓰고 있는지,
그 방향이 곧 마음의 방향이라는 것입니다.
보물은 단지 재물이 아니라
내가 가장 붙들고 사는 모든 것을 뜻할 수 있습니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인간의 마음이 늘 무엇인가를 사랑하며 살아간다고 보았습니다.
그의 시선으로 보면
오늘 복음의 핵심은
“가진 것”보다 “사랑하는 것”에 있습니다.
사람은 자기가 사랑하는 곳을 향해 살고
마음은 결국 자기가 보물로 여기는 곳에 묶이게 됩니다.
그래서 문제는
보물을 갖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보다
그 보물이 내 마음을 사로잡아
하느님보다 더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가 하는 데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땅의 보물은 좀과 녹, 도둑 때문에 사라질 수 있다고 하십니다.
이는 세상 것이 본래 악하다는 뜻이 아니라
그것이 궁극적 근거가 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세상의 성공, 재산, 명예, 평판,
심지어 내가 의지하던 어떤 안정감도
흔들릴 수 있습니다.
아우구스티노는
바로 이 불안정한 것에 마음 전체를 걸 때
인간이 깊이 불안해진다고 보았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라질 것 위에 삶을 세우면
마음도 함께 흔들리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하늘의 보물은
하느님 안에서 사라지지 않는 가치입니다.
사랑, 자비, 진실, 용서,
선행, 믿음, 하느님께 대한 충실함,
이런 것들은 세상의 평가로 다 헤아릴 수 없지만
하느님 나라 안에서는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성 보니파시오의 삶이 바로 그렇습니다.
그의 선교와 순교는
세상 기준으로 보면 손해와 위험, 상실이었을 수 있지만
하느님 앞에서는 사라지지 않는 보물이 되었습니다.
또 예수님께서는
“눈은 몸의 등불”이라고 하십니다.
눈이 맑으면 온몸이 밝고
눈이 성하지 않으면 온몸이 어둡다고 하십니다.
아우구스티노의 관점에서 보면
이 눈은 단순한 시각 기관만이 아니라
마음의 시선, 곧 내적 의도와 분별의 눈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내가 세상을 어떤 눈으로 보고 있는가?
사람을 어떤 기준으로 바라보는가?
무엇을 가치 있다고 판단하는가?
그 눈이 맑으면 삶 전체가 밝아지고
그 눈이 흐리면 삶 전체가 어두워질 수 있습니다.
친절 / 선행 주간의 관점에서 보면
친절은
사람을 이익과 쓸모의 기준으로만 보지 않는 맑은 눈에서 시작됩니다.
누군가가 나에게 얼마나 유용한가보다
그 사람이 하느님 앞에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가를 보는 눈입니다.
선행도 이와 같습니다.
당장 눈에 보이는 보상을 바라지 않고
하늘의 보물을 위해 행동하는 것입니다.
감사받지 못해도,
즉시 결과가 보이지 않아도,
하느님 앞에서 선을 택하는 것,
그것이 선행입니다.
성인의 날의 관점에서 보면
성 보니파시오의 삶은
예수님의 이 말씀을 몸으로 살아 낸 증언처럼 보입니다.
그는 안전을 땅에 쌓지 않고
복음을 하늘의 보물로 삼았습니다.
순교는 잃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진짜 보물로 여겼는지 드러내는 마지막 고백이 됩니다.
보물이 하늘에 있던 사람은
삶도 죽음도 하느님께 맡길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조용히 묻습니다.
내 보물은 어디에 있는가?
내 마음은 지금 무엇에 가장 묶여 있는가?
나는 사람을 존엄의 눈으로 보는가,
아니면 유용성의 눈으로 보는가?
나는 사라질 것들에 너무 많이 마음을 걸고 있지는 않은가?
주님께서는 오늘도
우리의 눈을 밝히시고
보물의 자리를 다시 묻게 하십니다.
주님,
사라질 것에 제 마음을 다 빼앗기지 않게 하시고
하늘의 보물을 더 사랑하게 하소서.
제 눈을 밝히시어
사람과 세상을 바르게 보게 하시고
친절과 선행을 통해
당신 안에 쌓이는 삶을 살게 하소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