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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상적 시혜와 보편적 자비

by 이마르첼리노M posted Jun 14,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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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상적 시혜와 보편적 자비

 

하느님의 무상(無償)적 사랑

무상(無償)이라는 말 그대로 하느님의 은총은 대가 없이, 조건 없이, 먼저 주어집니다. 우리는 흔히 사랑받기 위해 더 착해져야 하고, 더 많은 공로를 쌓아야 하며, 더 나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복음은 정반대를 말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그분을 찾기 전에 먼저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우리가 회개하기 전에 먼저 용서하십니다. 우리가 사랑하기 전에 먼저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은총은 거래가 아니라 선물입니다.

 

인간의 공로나 자격 때문이 아니라 하느님의 자유로운 사랑에서 흘러나오는 선물이며, 인간이 먼저 하느님께 나아가기 전에 하느님께서 먼저 인간에게 다가오시는 선행적 은총입니다. 구원은 인간의 업적에 대한 보상이 아니라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받을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사랑하시기 때문에" 주어지는 은혜입니다. 성 프란치스코가 자신의 삶을 온전히 감사로 채울 수 있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성덕마저도 자신의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거저 베푸신 선물임을 알았습니다.

하느님의 보편적 자비

하느님의 사랑은 무상적일 뿐 아니라 보편적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아버지께서는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당신의 해가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이에게나 비를 내려 주신다." (마태 5,45) 햇볕은 국경을 모릅니다. 비는 차별하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자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분은 인간이 만든 경계선 안에 갇혀 계시지 않습니다. 선인과 악인, 가난한 이와 부유한 이, 신앙인과 비신앙인, 모든 사람을 당신 사랑 안에 품으십니다. 하느님의 자비는 특정한 사람들의 특권이 아니라 모든 피조물에게 열려 있는 생명의 원천입니다. 그래서 복음은 끊임없이 "누가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가?"를 묻지 않고, "누가 이미 사랑받고 있는가?"를 묻습니다. 답은 분명합니다. 모든 사람이 이미 사랑받고 있습니다.

프란치스칸 영성 안에서

프란치스칸 영성은 이 무상성과 보편성을 삶으로 살아내는 길입니다. 내적 가난은 "나는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는 자기비하가 아니라, "내가 가진 모든 것이 선물이다." 라는 깨달음입니다. 겸손은 자신을 낮추는 기술이 아니라, "나에게 주어진 모든 것이 은총이다." 라고 고백하는 진실함입니다. 형제성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끼리의 모임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사랑하시는 사람을 나 또한 사랑하는 삶입니다. 그래서 프란치스칸들의 삶은 끊임없이 이 고백으로 돌아갑니다. 나는 거저 받았습니다. 생명도 거저 받았습니다. 용서도 거저 받았습니다. 형제자매도 거저 받았습니다. 오늘 하루도 거저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나 역시 거저 사랑하고, 거저 용서하고, 거저 섬기고, 거저 내어주는 사람이 됩니다. 그때 우리는 비로소 하느님의 무상적 사랑과 보편적 자비가 우리 안을 통과하여 세상으로 흘러가는 살아 있는 통로가 됩니다. 그리고 그 통로를 통해 세상은 조금 더 따뜻해지고, 조금 더 넓어지며, 조금 더 하느님 나라를 닮아 갑니다.

 

내가 가진 선한 것들, 내가 누리는 생명과 자연의 아름다움이 모두 대가 없이 주어진 선물임을 깨달을 때 비로소 흘려보낼 수 있는 넉넉한 마음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마태 10,8) 이 말씀은 단순히 가진 것을 나누라는 권고가 아니라, 내 존재 자체가 이미 선물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하는 복음의 초대입니다.

 

우리는 생명을 청한 적이 없는데 생명을 받았습니다. 햇살도, 바람도, 물도, 부모의 품도, 누군가의 따뜻한 미소도 값을 치르고 얻은 것이 아닙니다. 사랑할 수 있는 마음과 용서할 수 있는 힘,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용기마저도 결국은 먼저 주어진 은총입니다. 그런데 사람은 자주 받은 것을 자신의 소유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노력해서 얻었고, 내가 지켜야 하며, 내가 통제해야 한다고 여깁니다. 그 순간 선물은 소유가 되고, 소유는 두려움을 낳습니다. 잃어버릴까 염려하고, 남보다 적을까 비교하며, 더 많이 쌓아 두려 합니다.

 

프란치스칸 영성은 다르게 말합니다. 아무것도 내 것이 아니기에 모든 것이 선물입니다. 모든 것이 선물이기에 움켜쥘 이유가 없습니다. 움켜쥐지 않을 때 비로소 흘려보낼 수 있습니다. 성 프란치스코는 자신이 받은 모든 것을 하느님께 되돌려 드리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가난했지만 가장 부유했고,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았지만 모든 피조물을 형제와 자매로 품을 수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은 따뜻한 시선하나, 진심 어린 경청 하나,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주는 마음 하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모릅니다. 거저 받은 사람만이 거저 줄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인간의 자격이나 공로에 대한 보상이 아니라, 그분 존재 자체에서 흘러나오는 무상적(無償的) 사랑이며 보편적 사랑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아버지께서는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당신의 해가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이에게나 비를 내려 주신다." (마태 5,45) 햇볕은 착한 사람의 집 지붕에만 내리지 않습니다. 비도 의로운 사람의 밭에만 내리지 않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누구를 먼저 사랑할지 계산하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선해서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선해질 수 있습니다. 우리가 변화되어서 은총을 받는 것이 아니라 은총을 받았기 때문에 변화될 수 있습니다. 복음의 혁명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세상은 보통 자격을 묻습니다. 얼마나 노력했는가, 얼마나 공헌했는가, 얼마나 가치 있는 사람인가를 따집니다. 그러나 하느님 나라는 공로보다 먼저 선물이 있습니다. 태어남도 선물이고, 만남도 생명도 선물입니다. 용서도 선물이고, 구원도 선물입니다. 프란치스칸 영성은 이 사실을 깊이 깨닫게 합니다. 성 프란치스코는 자신을 "가장 작은 형제"라고 불렀습니다. 그것은 자신을 비하한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선물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능력도, 사명도, 형제들도, 자연도 모두 하느님께로부터 거저 받은 은총이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내적 가난은 아무것도 가지지 않는 상태가 아니라, 모든 것을 선물로 받아들이는 태도입니다.

 

아침에 눈을 뜨는 것도 선물입니다. 누군가와 함께 식탁에 앉는 것도 선물입니다. 서로 다른 사람이 한 공동체 안에서 형제가 되는 것도 선물입니다. 오늘 나에게 주어진 기쁨도, 때로는 나를 성장시키는 시련조차도 선물일 수 있습니다. 이 선물의 세계를 깨달은 사람은 더 이상 비교하지 않습니다. 왜 저 사람은 더 많이 받았는가를 묻기보다, "나는 이미 너무 많이 받았습니다." 라고 고백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때 비로소 예수님의 말씀이 가능해집니다.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거저 받은 사랑은 거저 흘러갑니다. 거저 받은 용서는 거저 용서하게 합니다. 거저 받은 자비는 거저 자비를 베풀게 합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햇볕처럼 차별 없이 내리고, 비처럼 경계를 넘어 스며듭니다. 그리고 그 사랑을 받아들인 사람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누군가의 햇볕이 되고, 누군가의 단비가 됩니다. 그것이 복음에서 삶으로, 삶에서 복음으로 이어지는 하느님 나라의 가장 아름다운 방식입니다. 받은 것이 선물임을 아는 사람만이 세상을 향해 선물처럼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하루, 내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작은 평화가 되어 봅시다. 미소 하나를 거저 주고, 격려 한마디를 거저 주고, 용서 한 번을 거저 주고, 감사 한마디를 거저 주며 살아갑시다. 그러면 우리는 어느새 깨닫게 될 것입니다. 거저 주는 사람은 잃는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의 풍요로움이 흘러가는 통로가 된 사람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통로를 지나갈 때마다 우리의 마음도 더욱 넓어지고 자유로워진다는 것을. 오늘도 거저 받은 은총 안에서 거저 사랑하고, 거저 용서하며, 거저 기뻐하는 평화로운 하루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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