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전보다 분명히 자기 연민이 넘칩니다.
너나없이 자기 연민에 빠져 삽니다.
자기만 힘들다고 생각하고 자기가 제일 힘들다고 생각하는데
왜 그럴까? 원인을 생각해 보면 옛날에는 먹고 사는 것이 너무도 치열하고
힘들어 그럴 겨를이 없었던 것에 비해 지금은 그 정도가 아니기 때문일 것입니다.
어쨌거나 너나없이 자기 연민에 빠져 살면
그 결과 다른 사람에 대한 연민을 가질 수 없습니다.
곧 다른 사람의 고통을 볼 수 없게 된다는 말이지요.
그런데 왜 자기 연민에 대해 오늘 얘기를 꺼냈느냐 하면
군중에 대한 연민을 주님께서 오늘 드러내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그들이 목자 없는 양들처럼 시달리며 기가 꺾여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연민만 드러내시지 않고
이렇게 된 원인과 그것을 풀 해법을 제시하십니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주십사고 청하여라.”
군중이 이렇게 기가 꺾여 살게 된 것은 목자가 없기 때문이고,
더 정확히 얘기하면 진정한 목자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해야 할 것은 양들을 억압하고 잡아먹고 팔아먹는 거짓 목자를 대신할
진정한 목자를 하느님께서 보내주십사 청하라고 하며 열두 제자를 뽑으십니다.
그러니까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너희 나의 제자들아, 연민이 없이 등골이나 빼먹으려는 저 거짓 목자들과 달리
너희는 나의 제자답게 양들에 대한 연민을 가지고 그들을 찾아가거라.
“가서,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하여라.
앓는 이들을 고쳐주고, 죽은 이들을 일으켜 주어라.”
문제는 주님께서 우리도 당신 제자로 삼겠다 하실 때 예라고 할 것인가? 그것이고,
오늘 탈출기의 주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의 공동체가 주님의 소유가 되고,
사제들의 나라가 되고, 거룩한 민족이 될 것이라고 하시는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될 수 있다면 영광이라고 생각할 것이고 또 흔쾌히 그리될 것인가? 그것입니다.
제 생각에 신자라면 영광스럽게 생각하긴 할 것입니다.
그러나 영광스럽긴 해도 부담스럽다고 생각할 수 있고,
나는 그런 능력도 없고 자격도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만큼 살고 난 저로서는 제자 되는 것이 영광도 부담도 아니고,
능력의 문제나 자격의 문제도 아니고 사명이고 사랑이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라고 하신
오늘 주님 말씀이 바로 내게 하신 말씀이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느님께 받은 것이 하나도 없다고 생각하면
가난한 이들에게 아무것도 주지 않아도 되고
기가 꺾인 이들을 위해 전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님께 거저 받았고, 넘치도록 많이 받았다고 생각한다면
그래서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면 입을 싹 닦고 있을 수 없을 것이고,
오늘 연중 주일의 감사송처럼 감사의 노래를 이렇게 소리 높여 부를 것입니다.
“거룩하신 아버지,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언제나 어디서나 아버지께
감사함이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옵니다. 저희는 죄와 죽음에서 벗어나
선택된 겨례, 임금의 사제단, 거룩한 민족, 하느님의 백성이 되었고 저희를
어둠에서 놀라운 빛으로 부르신 주님의 권능을 온 세상에 전하며 외치나이다.”

강론하셨는지 비교하면 더욱 풍성한 내용을
알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