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6,51–58
예수님께서는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다.”
그리고 이어
“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 하십니다.
이 말씀은 듣는 이들에게 매우 충격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물러서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더 깊이
당신 자신이 생명이라는 사실을 드러내십니다.
성 예로니모는
말씀을 사랑한 교부였지만
그 말씀은 결코 글자에만 머물지 않는다고 보았습니다.
그의 시선으로 보면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단지 생명을 설명해 주시는 분이 아니라
당신 자신이 생명의 양식이심을 보여 줍니다.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듣고 배울 뿐 아니라
주님의 생명을 받아 모셔야 합니다.
신앙은 멀리서 존경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그리스도의 생명이 실제로 내 안에 머물게 하는 데까지 나아갑니다.
예수님께서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사람 안에 머문다” 하신 말씀은
매우 깊습니다.
성체성사는 단지 외적인 종교 행위가 아니라
그리스도와의 상호 내주,
곧 주님이 내 안에 사시고
내가 주님 안에 사는 신비를 드러냅니다.
예로니모는
주님의 말씀과 성체의 은총이
함께 인간의 내면을 변화시킨다고 보았을 것입니다.
주님을 받아 모신다는 것은
내 안에 다른 생명의 원리가 들어오는 일입니다.
그래서 성체는
습관이 아니라 변화를 요구합니다.
오늘 복음은
영적 열매 성월의 시작과도 깊이 이어집니다.
성실은
이 생명의 빵 안에 끝까지 머무는 데서 나옵니다.
내 기분이 어떠하든,
삶이 흔들리든,
주님을 생명의 중심으로 다시 붙드는 태도,
그것이 성실입니다.
온유도 여기서 자랍니다.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받아 모신 사람이
타인을 거칠게 대하고
자기 힘만 앞세우며 살 수는 없습니다.
절제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참된 양식을 아는 사람은
순간의 욕망과 소음에 휩쓸리지 않고
무엇이 정말 나를 살리는지 더 분명히 알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고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처럼
나를 먹는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 것이다” 하십니다.
이 말씀은
성체가 단지 개인적 위로가 아니라
성부와 성자 사이의 생명 안으로 우리를 초대한다는 뜻입니다.
곧 성체는
하느님의 생명 흐름 안으로 들어가는 문입니다.
예로니모의 시선으로 보면
이것은 놀라운 강생의 연장이기도 합니다.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신 까닭은
인간을 당신 생명에 참여하게 하시기 위함이기 때문입니다.
성체의 날의 관점에서 보면
오늘 복음은
우리를 아주 단순한 질문 앞으로 데려갑니다.
나는 무엇으로 살고 있는가?
세상의 인정인가,
습관인가,
불안한 자기 확신인가,
아니면 주님의 몸과 피가 주시는 생명인가?
성체를 받아 모신다는 것은
주일 한때의 경건이 아니라
삶 전체의 중심을 다시 정하는 일입니다.
영원한 양식을 받은 사람은
매일의 선택도 달라져야 합니다.
영적 열매 주간의 관점에서 보면
주님의 생명에 머무르는 사람 안에서
열매는 저절로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자라나기 시작합니다.
성실은 머무름에서,
온유는 친교에서,
절제는 참된 양식을 아는 데서 자랍니다.
그러므로 오늘 복음은
열매를 억지로 만들라는 명령이 아니라
먼저 생명의 근원 안에 머물라는 초대입니다.
오늘 우리는 조용히 묻습니다.
나는 정말 주님의 생명으로 살고 있는가?
나는 성체를 받아 모시면서도
여전히 다른 양식들에 더 의지하고 있지는 않은가?
나는 주님 안에 머무는 성실함을 배우고 있는가?
나는 성체의 생명을 받아
온유와 절제로 살아가고 있는가?
주님께서는 오늘도
당신 자신을 우리에게 내어 oo주시며 말씀하십니다.
“나를 먹는 사람은 나로 말미암아 살 것이다.”
주님,
당신을 멀리서 존경하는 데 머물지 않게 하시고
당신 생명을 실제로 받아 모시게 하소서.
성체 안에 머무는 성실함을 주시고
그 생명으로 이웃을 대하는 온유를 주시며
무엇이 참된 양식인지 아는 절제를 주소서.
당신 안에 머물러
영원한 생명을 살게 하소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