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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나누기

2026년 6월 4일 목요일 아니마또레 평화기도 학교 말씀 기도

by 고도미니코 posted Jun 03,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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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복음 말씀 묵상 ✝️
마르코 12,28ㄱㄷ–34
율법 학자 한 사람이 예수님께 다가와 묻습니다.
“모든 계명 가운데에서 첫째가는 계명은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는 먼저
“이스라엘아, 들어라.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
그러므로 너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하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곧바로
“둘째는 이것이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하십니다.
이 두 계명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고 분명히 선언하십니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복음의 말씀 안에서
겉으로 많은 규정을 지키는 신앙보다
중심이 바로 선 사랑의 신앙을 중요하게 보았습니다.
그의 시선으로 보면
오늘 예수님의 대답은
수많은 계명 가운데 하나를 고르는 답이 아닙니다.
오히려 모든 계명의 심장,
모든 율법의 중심이 무엇인지 밝히는 말씀입니다.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서로 떨어진 두 길이 아니라
하나의 사랑이 위와 옆으로 동시에 열리는 방식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먼저
“들어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랑은 먼저 듣는 데서 시작됩니다.
하느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많이 하는 것보다
하느님의 말씀을 중심에 두는 것입니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해
하느님을 사랑하라는 말씀은
삶의 한 부분만이 아니라
존재 전체가 하느님께 향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주일 한때만,
기도하는 몇 분만,
생각의 일부만 하느님께 드리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의 중심 자체를 하느님께 두라는 부르심입니다.

크리소스토모의 관점에서 보면
이 계명은 무거운 부담이기 전에
인간 존재의 질서를 바로 세우는 말씀입니다.
사람은 무엇인가를 중심에 두고 삽니다.
돈이든 인정이든 체면이든 두려움이든
무엇인가를 가장 사랑하며 살아갑니다.
그래서 문제는
사랑하지 않는 데 있지 않고
무엇을 가장 사랑하느냐에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흩어진 사랑, 뒤틀린 사랑,
잘못된 중심에 붙들린 사랑을
다시 하느님께로 돌려놓으십니다.
이것이 회복입니다.
또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사랑을 말씀하신 뒤
곧바로 이웃 사랑을 떼어놓지 않으십니다.
이는 매우 중요합니다.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이웃을 멸시하거나 무시하는 것은
복음의 중심과 어긋납니다.
크리소스토모는
신앙이 입술의 경건에 머무르지 않고
실제 삶의 자비와 돌봄으로 드러나야 한다고 자주 강조했습니다.
하느님 사랑은
보이지 않는 열심으로만 증명되는 것이 아니라
곁에 있는 이웃을 대하는 태도 안에서 시험됩니다.
그러므로 이웃 사랑은
하느님 사랑의 부록이 아니라
하느님 사랑의 진실성을 드러내는 자리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율법 학자가
“번제물과 희생 제물보다 이것이 더 중요합니다”라고 응답하자
예수님께서는
“너는 하느님 나라에서 멀리 있지 않다”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도 매우 깊습니다.
하느님 나라는
멀리 있는 신비한 장소 이전에
사랑의 중심이 바로 설 때 가까워지는 현실입니다.
형식보다 사랑,
제사보다 자비,
겉의 열심보다 중심의 진실이 바로 설 때
하느님 나라는 가까이 옵니다.
크리소스토모는
바로 이 자리에서
진짜 신앙과 가짜 신앙이 갈린다고 보았습니다.

영적 성찰 주간의 관점에서 보면
오늘 복음은
내 삶의 중심이 무엇인지 아주 단순하지만 깊게 묻게 합니다.
나는 정말 하느님을 가장 사랑하고 있는가?
내가 가장 많이 생각하는 것,
가장 크게 두려워하는 것,
가장 쉽게 무너지는 자리가
곧 내 사랑의 방향을 보여 주고 있지는 않은가?
또 나는 이웃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판단과 무관심, 피로와 자기보호 뒤에 숨어 있지는 않은가?
성찰은 바로
삶의 중심 사랑을 점검하는 시간입니다.

목요일 성모님의 날에
우리는 마리아를 바라봅니다.
성모님은 하느님을 온 마음으로 사랑하셨기에
자기 삶 전체를 “예”로 내어 드릴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은
엘리사벳을 찾아가는 걸음이 되었고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남을 먼저 살피는 마음이 되었고
십자가 아래 끝까지 머무는 사랑이 되었습니다.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한 몸처럼 드러난 삶이 바로 성모님의 삶입니다.
오늘 우리도 그 길을 배우고자 합니다.

오늘 우리는 조용히 묻습니다.
내 삶의 첫째 계명은 실제로 무엇인가?
나는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정작 다른 많은 것들을 더 크게 두려워하고 더 집착하고 있지는 않은가?
나는 이웃을 사랑하는가,
아니면 사랑해야 한다는 생각만 품고 있는가?
주님께서는 오늘도
사랑의 중심으로 우리를 다시 부르십니다.

주님,
제 마음의 중심을 바로 세워 주소서.
당신을 부분적으로가 아니라
온 마음과 목숨과 정신과 힘을 다해 사랑하게 하시고
그 사랑이 이웃에게로 흘러가게 하소서.
형식에 머물지 않게 하시고
사랑의 중심이 살아 있는 제자가 되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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