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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한생이 아니라 영생을

by 김레오나르도 posted May 29,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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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엘아자르는 젊은이들뿐 아니라 온 민족에게

자기의 죽음을 고결함의 모범과 덕의 귀감으로 남기고 죽었다.”

 

제 생각에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축일에 마카베오서의

엘아자르 얘기를 독서로 선택한 전례적 이유가 있는 것 같습니다.

엘아자르와 복자 윤지충 사이에 비슷한 점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둘 다 제사를 거부하다가 순교하게 되는 점이 우선 같습니다.

 

그런데 제사 거부 때문에 순교하게 된 거라고 아주 단순화하여 얘기할 수도 있지만

속 내용을 보면 우리가 생각할 점이 많고 복잡합니다.

 

지금 우리의 눈으로 보면 겉으로는 박해자들이 원하는 대로 제사를 드려주고

마음속으로는 하느님께 제사를 드리면 되지 않나 생각할 수도 있기 때문이고,

겉으로 배교해도 속으로 배교하지 않으면 된다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 생각에 그렇게 해도 됩니다.

우리 박해 시대에도 그런 분이 많이 있었을 것이고,

마음속을 아시는 하느님께서도 그런 분들을 배교자라고 하지 않으셨을 겁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꼭 당신을 위해 순교하기를 바라실까요?

또 우리가 이 세상에서 행복하게 살다가

수명을 다하고 죽는 꼴을 보기 싫어하실까요?

 

우리도 우리 자식이 이 세상에서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다 죽게 되길 바라지

고생고생하다가 죽고 병들어 신음하다가 죽게 되기를 바라지 않지 않습니까?

 

하느님께서는 더더욱 우리가 건강하게 살다가 죽게 되기를 바라시고

당신을 위해 죽는 것을 더 바라시거나 꼭 바라시지는 않으실 겁니다.

 

그러므로 순교자의 순교는 하느님의 강요 때문이 아니라 우리의 사랑 때문이고
배교하지 않기 위해 순교하는 것이 아니라 증거하기 위해서 순교하는 것입니다
.

 

그리고 이분들은 하느님을 사랑하고 영생을 믿었기 때문에

죽음이 죽음이 아니요 고통스럽고 슬프기만 한 죽음이 아니었습니다.

 

그분들은 일생을 집착하면 영생을 잃고

일생을 포기하면 영생을 얻는다는 것을 알고 믿은 분들이고

더 나아가 자기들이 한 알의 밀알이 되어 많은 열매를 맺는,

곧 그것을 믿는 사람들이 많아지기를 바랐던 분들입니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이 세상에서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목숨을 간직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들의 순교 축일에 우리가 깨닫고 믿어야 할 것은

일생 때문에 영생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일생, 한평생, 한뉘, 이러한 생은 하나의 생입니다.

하나의 생을 위해 영원한 생명을 잃지 말아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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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홈페이지 용서받은죄인(성체순례자) 3 시간 전
    신부님의 말씀을 같은 전례시기에는 어떻게 묵상하고
    강론하셨는지 비교하면 더욱 풍성한 내용을
    알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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