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이들이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 나를 사랑하느냐?”
나이를 먹을수록 이런 생각이랄까 염려를 하게 됩니다.
내가 나이를 먹어도 계속 사랑할 수 있을까?
내 몸 하나 제대로 지탱하지 못하고 오히려
다른 이에게 돌봄을 받게 되어도 사랑할 할 수 있을까?
이는 내 코가 석 자인데도 사랑할 수 있냐는 말이지요.
흔히 그렇게 얘기하지 않습니까?
내 손에 박힌 가시가 남의 암보다 더 고통스럽고 더 신경 쓰인다고 말입니다.
그러므로 이들이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나를 더 사랑하냐고 물으시는 뜻도
이런 뜻과 연결하여 생각해보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내 고통이 크면 남을 생각할 수 없고,
사랑은 더더욱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시몬 베드로는 보통 사람이 아니라 주님을 따라서
또 주님의 후계자로 주님의 양들을 돌봐야 할 사람입니다.
그러니 다른 사람 보통 사람보다는 더 사랑해야 할 사람입니다.
이제 우리를 생각해봐야 합니다.
더 사랑해야 할 사람입니까? 아닙니까?
바티칸 공의회의 수도 생활 문헌 ‘Perfectae Caritatis(완전한 사랑)’는
수도자란 완전한 사랑을 사는 사람이라고,
더 정확히 얘기하면 더 완전한 사랑을 사는 사람이라고 얘기합니다.
그리스도인 누구나 원수 사랑을 포함하여 완전한 사랑을 살아야 하지만
수도자들은 믿지 않는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고,
그들보다도 더 완전한 사랑을 살아야 하는 사람입니다.
주님께서는 마태오 복음에서 이렇게 말씀하신 바가 있습니다.
자기 형제들에게만 인사한다면 남보다 잘하는 것이 무엇이겠느냐고 말씀하신 다음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주님의 제자라면 하느님처럼 완전해야 한다고 하시는데
여기서 완전은 능력에 있어서 완전한 것이 아니라 사랑에 있어서 완전한 것입니다.
그래서 루카 복음의 병행 구절에서는 ‘완전’이 ‘자비’로 바뀝니다.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그러므로 주님의 가르침을 받지 않고 그래서 따르지 않을 사람이라면 모르지만
주님께 사랑에 대한 가르침도 받고 따르기로 한 제자라면
더 사랑해야 할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더 사랑하는 것도
남보다 더 사랑해야 할 뿐 아니라
오늘보다 내일 더 사랑해야 할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