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16,29–33
제자들은 예수님께 말합니다.
“이제는 분명히 말씀하시고
비유로 말씀하지 않으시니
우리는 스승님께서 모든 것을 아신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믿음이 아직 시련을 통과한 믿음은 아님을 아십니다.
곧 제자들은 흩어질 것이고
예수님을 혼자 남겨 둘 것입니다.
그런데도 주님은
그들의 약함을 단죄하기보다
미리 말씀하시며 붙들어 주십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이렇게 선언하십니다.
“너희는 세상에서 고난을 겪을 것이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
이 말씀은
그리스도인의 길이
환난 없는 안전지대가 아님을 솔직하게 보여 줍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고난이 없을 것이라고 약속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고난이 있음을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 고난이 마지막 말은 아니라고 선언하십니다.
세상은 위협할 수 있으나
결코 궁극적 승자가 아닙니다.
주님께서 이미 세상을 이기셨기 때문입니다.
오리게네스는
복음의 말씀을 읽을 때
겉으로 드러난 사건 뒤에 있는 영적 의미를 깊이 보려 했습니다.
그의 시선으로 보면
“세상”은 단지 외적인 환경만이 아니라
하느님을 잊게 만드는 두려움,
자기 보존만을 붙드는 마음,
진리보다 안정을 더 사랑하게 만드는 질서를 뜻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세상을 이기셨다는 말씀은
정치적 승리나 외적 우세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거짓과 두려움,
죄와 죽음의 권세를 넘어서는
하느님의 생명과 진리의 승리를 뜻합니다.
오늘 복음은
제자들의 약함도 정직하게 드러냅니다.
그들은 “이제 믿습니다”라고 말하지만
곧 흩어집니다.
이 장면은
우리 자신의 모습과도 닮아 있습니다.
우리는 결심하지만 흔들리고,
믿는다고 말하지만 두려워하며,
주님을 안다고 생각하지만
막상 시련 앞에서는 쉽게 흩어집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 약함을 아시면서도
우리에게 말씀을 주십니다.
믿음은 자기 확신의 단단함이 아니라
흩어지는 순간에도 다시 주님께 돌아오는 은총임을 알려 주십니다.
문화 주간의 관점에서 보면
오늘 복음은
문화가 단지 편안한 표현의 공간이 아님을 보여 줍니다.
우리가 어떤 이야기와 상징,
어떤 언어와 기억을 품고 사느냐는
환난을 대하는 방식까지 바꿉니다.
세상의 문화는 종종
강한 자의 승리와 즉각적인 성공,
불편함을 피하는 삶을 이상처럼 제시합니다.
그러나 복음은
환난 가운데서도 평화를,
고난 가운데서도 용기를,
패배처럼 보이는 자리에서도
주님의 승리를 기억하게 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문화는
도피의 문화가 아니라
희망의 문화입니다.
오리게네스는
말씀이 단지 바깥에서 들리는 소리가 아니라
영혼 안에 자리 잡아
사람을 새롭게 빚는 힘이라고 보았습니다.
오늘 거룩한 독서의 날에
이 말씀은 더욱 중요합니다.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
이 짧은 말씀 하나가
두려움에 사로잡힌 마음 안에서
새로운 문화, 곧 신뢰와 인내와 희망의 문화를 세울 수 있습니다.
문화는 거창한 제도만으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마음속에 반복해 새겨지는 말씀 하나가
삶의 결을 바꾸고
공동체의 분위기를 바꿉니다.
오늘 우리는 조용히 묻습니다.
나는 지금 무엇 앞에서 흔들리고 있는가?
내 안의 두려움은 무엇인가?
나는 세상의 기준이 주는 불안을 더 크게 듣고 있는가,
아니면 주님의 승리의 말씀을 더 깊이 듣고 있는가?
주님께서는 오늘도
우리의 환난을 외면하지 않으시면서
그 한가운데서 평화를 주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향해 말씀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이미 이겼다.
주님,
환난 속에서도 당신의 말씀을 잊지 않게 하시고
흩어지는 마음을 다시 모아 주소서.
세상이 주는 불안을 절대화하지 않게 하시며
당신의 승리 안에서
평화와 용기를 배우게 하소서.
제 약함까지 아시는 당신 안에서
다시 일어나는 믿음을 주소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