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그렇듯 이번에도 예수 승천 대축일이 내게 무슨 의미일까 생각해봤습니다.
다시 말해 주님께서 우릴 떠나 하늘로 오르신 것이 내게 무슨 의미냐는 말입니다.
사실 우릴 떠나시고 마는 것이라면 그것도 당신이 좋아서 떠나시고
우리가 어떻게 되든 상관 없이 떠나시고 마는 것이라면 그것은
그분에게 의미가 있는 것이지 내게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지요.
그러므로 주님의 성탄과 부활을 우리가 기뻐하고 대축일로 경축함이
그분께서 우릴 위해 오시고 부활하셨기에 기뻐하고 경축하는 것처럼
주님 승천도 우릴 위한 것이기에 의미가 있는 것이고 기뻐하고 경축하는 것이지요.
그 의미를 오늘 본기도도 그렇지만 감사송은 정확하고 명료하게 전해줍니다.
“주 예수님께서 저희 머리요 으뜸으로 앞서가심은
비천한 인간의 신분을 떠나시려 함이 아니라
당신 지체인 저희도 희망을 안고 뒤따르게 하심이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릴 떠나시고 비천한 인간의 신분을 떠나시려 승천하신 것이 아니라
앞서가시는 것이고 우리가 거기에 희망을 두고 뒤따르게 하시려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니 이 축일을 지내며 우리가 마음에 새겨야 할 말은
‘앞서가심’과 ‘뒤따름’ 두 단어이고 그리고 그사이에
희망이 있어야 하니 세 단어를 우린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먼저 앞서가심이라고 우리는 알아야 하고 그렇게 의미를 둬야 합니다.
앞서가시지 않고 두고 가시거나 버려두고 가시는 것은 사랑이 아니고,
앞서가셔야지만 구원이고 사랑인데 문제는 그것을 알아야 의미가 있는 거지요.
그렇습니다.
그것을 알아야 주님 승천이 사랑이 되고 의미가 발생하는데
그런 줄 모르면 홀로 가심이 될 것이고 우리의 뒤따름이 없겠지요.
그런데 많은 경우 우리가 뒤따르지 않는 것은 모르기 때문도 있지만
하늘에 희망을 두지 않기 때문이고 하늘에 희망을 두지 않는 것은
이 세상에 욕망을 두거나 이 세상이 너무 재미있고 즐겁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남 얘기가 아니고 제 얘기입니다.
저는 주님 승천이 앞서가심이라고 알고 있고 우리가 뒤따라야 함도 알곤 있습니다.
문제는 이 세상에 그리 욕망을 두지 않지만 요즘 세상살이가 재미있고 즐겁습니다.
그제는 하루 내내 열무와 얼갈이배추를 수확하고 다듬는데 그것을 김치 담가
여기저기 나눠줄 것을 생각하니 힘들지 않고 즐겁고 행복했으며
그것들이 너무 쇄서 다 버리게 되었는데도 즐겁고 행복했습니다.
그리고 어제는 어느 본당에서 피정을 왔는데 즐겁게 강의하였더니
그분들이 재미있게 들어서 보람이 있었고 그래서 제가 행복했습니다.
이러니 제가 하늘에 오르고 싶고 거기에 희망을 두겠습니까?
그러니 오늘 사도행전의 천사가 제게 너는 “왜 하늘만 쳐다보고
서 있느냐?”라고 말하지 않을 것이고 오히려 하늘 좀 보라고 할 것입니다.
그러니 하느님 나라의 행복 곧 사랑의 행복을 앞당겨 사는 것도 좋지만
저의 경우는 앞당겨 사는 것보다 뒤따라가서 제대로 살 것에 희망을 둬야 하고
무엇보다 주님 사랑이 뒤따라가는 것을 갈망하고 재촉하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올해 저는 죄송하지만 이런 지향만 두고
주님께서 그 은총을 차차 주실 것이라고 믿고 맡기겠습니다.

강론하셨는지 비교하면 더욱 풍성한 내용을
알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