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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나누기

부활 6주 화요일-어디로 가는지 묻지 않는 중생에게

by 김레오나르도 posted May 12,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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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나는 나를 보내신 분께 간다. 그런데도

어디로 가십니까?’하고 묻는 사람이 너희 가운데 아무도 없다.

오히려 내가 이 말을 하였기 때문에 너희 마음에 근심이 가득 찼다.

그러나 너희에게 진실을 말하는데 내가 떠나는 것이 너희에게 이롭다.”

 

오늘 주님께서는 제자들을 떠나 아버지께 가신다고 말씀하시는데

제자들이 어디로 가시는지 묻지 않는다고 나무라시는 것인지

서운해하시는 것인지 모르지만 아무튼 그 점을 지적하십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주제를 어디로 가는지 묻지 않는 중생이라고 정해봤습니다.

중생(衆生)이란 한자어를 그대로 풀이하면 많은 사람이라는 뜻이지만

불교에서는 아직 깨닫지 못한 많은 사람이고 그래서 구제 대상입니다.

 

그러므로 어디로 가는지 묻지 않는 중생이라고 한 것에는

어디로 가는지 묻지 않는 사람은 구제 대상이라는 뜻이 숨어있습니다.

 

어디로 가는지 묻지 않고 사는 인생은 두 부류입니다.

어디로 떠날 생각이 없는 안주적(安住的) 인생이거나

어디로 가야 하는지 묻지 않고 그저 방황하고 표류하는 인생입니다.

 

오늘 제자들은 떠날 생각이 없는 안주적 인생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이어 하시는 말씀을 보면 제자들 마음이 근심으로 가득하다고 하시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은 주님께서 가시는 쪽(방향)에 관한 관심은 없고,

주님이 떠나시고 난 뒤의 여기에 관한 관심밖에 없고

주님이 떠나시고 난 뒤 어떻게 살아야 하나 근심밖에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아버지께 가신다며 가시는 방향을 말씀하시는데

제자들은 주님께서 자기들을 떠나시는 것으로만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여 제자들은 주님께서 제시하신 방향을 놓치고 잃는 것입니다.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키는데 그곳을 보지 않는 것이고,

가리키는 사람을 보거나 자기만 보거나 하는 것입니다.

 

어쨌거나 주님 떠난 뒤 살 근심이나 하는 제자들에게 주님께서는

당신이 떠나시는 것이 오히려 이롭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당신이 떠나시는 것이 이롭다고 하시는데

이로움의 기준이 분명 제자들의 생각과 다릅니다.

 

제자들의 생각과 다르기에 이롭다고 가르쳐주시는 것입니다.

다르지 않다면 굳이 떠나시는 것이 이롭다고 말씀치 않으셨겠지요.

 

그렇다면 왜 주님이 떠나시는 것이 이롭습니까?

실은 주님이 떠나시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식의 현존입니다.

다른 식으로 제자들과 함께 계시는 것이고,

이름하여 초월적 내재(內在)입니다.

 

이제까지 함께 계시던 방식을 초월하는 함께 계심이고

육화적 임마누엘이 아니라 초월적 임마누엘이십니다.

 

성령께서 오시면

제자들에게 이것이 가능하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나누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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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홈페이지 용서받은죄인(성체순례자) 23 분 전
    신부님의 말씀을 같은 전례시기에는 어떻게 묵상하고
    강론하셨는지 비교하면 더욱 풍성한 내용을
    알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올립니다.^♡^
  • ?
    홈페이지 가온 30 분 전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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