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버지께 청하면, 아버지께서는 다른 보호자를 너희에게 보내시어,
영원히 너희와 함께 있도록 하실 것이다. 그분은 진리의 영이시다.”
오늘 주님께서는 당신이 제자들을 떠나실 때를 말씀하시며
‘그날’이라는 표현을 쓰십니다.
‘그날’이란 미래의 어느 날이고 매우 중요한 어느 날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그날이 우리에게도 같은 그날일까요?
나는 나의 ‘그날’을 가지고 있지는 않은가요?
오늘 우리가 이 복음 말씀을 듣는 것은
제자들의 ‘그날’이 우리에게도 같은 ‘그날’이 되게 하라는 뜻일 것입니다.
오늘 사도행전 끝부분을 읽은 것도 같은 이유에서일 것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내려가서 그들이 성령을 받도록 기도하였다.
그들이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을 뿐,
그들 가운데 아직 아무에게도 성령께서 내리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우리도 세례를 받았지만, ‘그날’이 아직,
성령을 받는 ‘그날’이 아직 오지 않은 것은 아닐까요?
그리고 이번 성령 강림 대축일에는 내게도 그날이 될까요?
그렇게 되도록 우리는 그날을 갈망도 하고 준비도 하며
남은 기간을 잘 보내야 하는데 오늘은 우선 왜 그날이 중요한지 보겠습니다.
그날이 중요한 이유는 그날에 성령께서 오시기 때문인데
그날에 오시는 성령은 진리의 영이십니다.
그리고 모든 진리로 인도하는 분이십니다.
여기서 모든 진리는 하느님 자체이시고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라고 하시는 주님이십니다.
그리니까 우리의 주님께서는 진리일 뿐 아니라 모든 진리이십니다.
그런데 “그분 곧 진리의 영께서 오시면 너희를 모든 진리 안으로
이끌어주실 것이다.”라고 요한복음이 말할 때의 그 ‘모든 진리’란 어떤 뜻입니까?
모든 진리란 말 그대로 일부 진리가 아니라 모든 진리이고,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일리(一理)와 다른 진리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진리 안으로 우리를 인도하는 성령께서 오실 ‘그날’을 준비하며
우리는 모든 진리에 비해 우리가 지닌 진리는 일리밖에 되지 않음을,
우리의 이성과 지적 능력이 얼마나 보잘것없음을 겸손하게 인정하고,
그러기에 계시의 완성자요 모든 진리이신 주님께로 우리를 성령께서
친히 인도해주시기를 간절히 청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다른 사람도 그리고 다른 종교와 문화도 일리를 가지고 있음을
인정하고 존중함으로써 같이 모든 진리를 이루려는 마음을 가져야 하고,
일치의 성령께서 각각의 진리를 한곳에 모아주시도록 청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날이 우리에게 더 중요한 것은 이것을 깨닫게 해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날, 너희는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또 너희가 내 안에 있으며 내가 너희 안에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러니까 그날 성령께서 깨닫게 해주시는데
주님께서 아버지 안에 계신다는 것,
우리가 주님 안에 있으며 주님께서 우리 안에 계신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십니다.
사실 이 진리를 깨닫는다는 것은 대단한 것이며 아주아주 중요합니다.
이는 불교나 힌두교의 범아일여(梵我一如)와 맥이 통하는 것이며,
우리는 홀로 있는 존재도 우리끼리 있는 존재도 아니라는 것이고,
하느님 안에 있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만도 놀라운데 더 놀라운 것은 우리 안에 주님께서 계신다는 것입니다.
내 안에 보물만 있어도 대단하고 우리 안에 성인만 있어도 대단한데
주님께서 내 안에 그리고 우리 안에 계시다니 이 얼마나 놀랍고도 대단합니까?
문제는 이것을 깨달아 아는 것입니다.
이것을 깨닫지 못하면 다 헛것이고,
완전히 행복할 수 있는데 그것을 놓치는 참으로 딱한 불행입니다.
다 잡은 고기를 놓치는 것보다 더 안타깝고도 불행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것까지 깨달아야 우리에게도 성령께서 오신 것이고,
이번 성령 강림 대축일이 그날이 된 것임을 묵상하는 오늘 우리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