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남기고 간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도, 겁을 내는 일도 없도록 하여라.”
어저께 받는 것, 하느님 사랑을 받는 것에 대해 얘기했지요.
오늘도 받는 것, 곧 주님께서 주시는 평화를 받는 것에 대해 얘기하겠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주시는 평화를 받아야 함에 대해서 얘기하지만
여기에는 주님께서 주실 때 거절하거나 놓치지 말고 받으라는 뜻도 있지만
다른 사람이 주는 것을 받지 말고 주님께서 주시는 것을 받으라는 뜻도 있겠지요.
그렇다면 주님께서 주시는 평화란 어떤 것입니까?
주님의 평화란 우선 거짓 평화가 아닙니다.
거짓 평화란 서로의 불의를 눈감아 주며 관계를 깨지 않으려는 평화입니다.
관계가 깨지는 것이 너무 두려워 좋은 게 좋지 않냐며 관계를 유지하는 평화입니다.
이런 평화에 대해서 주님께서는 분명하고 단호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지 마라.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
진리를 거스르는 불의의 공생관계는 단호하게 끊으라는 뜻으로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오셨다고 주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불안을 두려워하며 그저 평안하기를 바라는 평화도 주님의 평화가 아닙니다.
이런 평화는 사실 무사안일(無事安逸)과 다른 것이 아니고
그래서 이런 평화는 겁쟁이의 평화요 너무도 쉽게 깨지는 평화입니다.
그리고 평안이랄까 안락함이랄까 이런 것이 깨지는 것을 너무도 두려워하기에
역설적으로 그런 것들 때문에 너무도 쉽게 깨지는 허약한 평화입니다.
이런 면에서 오늘 바오로 사도는 진정 주님의 평화를 받아서 사는 분입니다.
복음을 선포하다 돌팔매질 당하여 거의 죽다 살아났음에도 평화롭기만 하고
“우리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합니다.”라고 하며
오히려 다른 사람을 격려합니다.
보통 인간에게 환난은 평화를 깨는 것이기에
두려워 피하는 것이고 환난이 닥칠까 불안해합니다.
그래서 주님은 오늘 복음에서 당신의 평화를 주신다고 말씀하신 다음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도, 겁을 내는 일도 없도록 하여라.”라고
제자들에게 이어서 하신 말씀도 바로 이런 상황을 염두에 두고 하신 말씀입니다.
환난이 없기를 바라지 않고 오히려 각오하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려는 희망으로 환난을 바라면,
그리고 평화의 원천이신 주님과 함께 환난을 당하면 환난 중에 평화롭고 오히려 기쁩니다.
사실 주님 자신이 우리의 평화이시고,
주님과 함께 있고 주님 안에 있는 것이 우리의 평화이니
우리는 환난이나 다른 무엇을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주님 없이 그런 것들을 맞이할까 두려워하고 불안해해야 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