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주님께서는 아버지께 가기에 앞서 믿으라는 말씀을 거듭하십니다.
“하느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고 한 말을 믿어라.
믿지 못하겠거든 이 일들을 보아서라도 믿어라.”
“나를 믿는 사람은 내가 하는 일을 할 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큰 일도 하게 될 것이다.
내가 아버지께 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는 주님을 믿는다는 것에 대해 또 묵상하고 나누고 싶습니다.
‘또’라고 제가 말씀드렸는데 그것은 제가 믿음에 대해
그리고 믿음의 중요성에 대해 이미 많이 나눴기 때문이지요.
그렇지만 오늘은 믿음의 일반적인 중요성이 아니라
어떤 믿음이 어떻게 제게 중요한지 보고 싶은 겁니다.
그리고 그것을 한 마디로 얘기하면
하느님의 존재를 믿는 것은 이제 별 의미도 없고 중요하지 않으며
하느님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나도 하느님 안에 있다는 것을 믿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사실 하느님이 객관적으로 계시는 것은 별 의미도 없고 중요치 않습니다.
쉽게 얘기해서 하느님이 계시긴 하지만 저기 시베리아에 계신다고,
거기서 벌벌 떨고 계시는 것이 제겐 별 의미 없으며 그렇게 믿는 것도 별 의미 없습니다.
시베리아에서 벌벌 떨고 계시는 주님은 제 안에서 죽어있는 하느님이나 마찬가지이고
제 안에 계실 때만 주님은 부활하신 하느님이요 살아계시는 하느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내가 주님 안에 있다고 믿는 것 또한 의미가 있고 중요합니다.
그래야 주님 안에 있는 내가 하느님 안에 있음을 믿게 되기 때문이고,
그래야 나는 외롭지 않고 든든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주님 안에 있지 않고 또 주님 안에서 하느님 안에 있지 않지 않을 때
나는 시베리아에서 나 홀로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아니 시베리아가 아니라 저 우주 캄캄한 데서 나 홀로 있는 것과 같습니다.
주님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주님 안에 있다는 것을 믿는 것이
왜 중요한지 또 다른 이유를 이제 보겠습니다.
오늘 독서에서 베드로 사도는 주님께 나아가라고 하고,
복음에서 주님은 당신은 아버지께 가는 길이라고 하시는데
우리가 주님 안에 있다면 이미 주님께 나아간 것이 되고,
아버지께 가는 길이신 주님 안에서 이미 하느님께 간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태중의 아기는 엄마 안에서 그리고 엄마와 함께 엄마가 가는 곳 어디든지 갑니다.
마찬가지로 주님 안에 있는 우리도 주님 안에서 주님과 함께
주님 가시는 곳으로 덩달아 가겠지요.
그러니 주님 안에 아버지 계시고 아버지 안에 주님 계심을 주님께서 확고하게 믿고 계시듯
우리도 우리 안에 주님 계시고 주님 안에 우리가 있음을 확고하게 믿음으로써
우리는 주님 안에서 든든하고,
우리는 주님 안에서 안심하고,
우리는 주님 안에서 외롭지 않게 살 것이고,
삼위일체 하느님과 완전한 일치를 이루며 살아갈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