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14,1–6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하느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
그리고 이어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하고 선언하십니다.
이 말씀은
불안한 마음을 향한 단순한 위로를 넘어
우리 존재의 방향을 다시 세우는 말씀입니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이 구절을 묵상하며
예수님께서 단지 길을 가르쳐 주시는 분이 아니라
당신 자신이 바로 그 길이심을 깊이 강조합니다.
사람은 길을 묻고 싶어 하지만
예수님은 지도만 주지 않으시고
당신 자신을 내어 주십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어디로 가야 하는지만 배우는 사람이 아니라
누구와 함께 가야 하는지를 아는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 길이시라는 것은
우리가 헤맬 때에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진리이시라는 것은
혼란과 거짓 속에서도
끝내 붙들어야 할 중심이 있다는 뜻입니다.
생명이시라는 것은
지쳐 있고 메말라 있을 때에도
우리 존재를 다시 살아나게 하는 근원이
주님 안에 있다는 뜻입니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인간의 마음이
하느님 안에서 쉬기까지는 참된 안식을 얻지 못한다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는 말씀은
그저 마음을 다독이는 말이 아니라
마음이 돌아가야 할 참자리를 보여 주는 말씀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흩어지는 것은
길이 너무 많아서가 아니라
길이신 분을 놓쳤기 때문입니다.
오늘 사랑/기쁨 주간 안에서
이 말씀은 더욱 깊이 들립니다.
사랑은
길을 잃은 이를 단죄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 길로 이끄는 힘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저 길로 가라” 하시는 데서 멈추지 않으시고
당신 자신이 길이 되어
우리 곁에 서 주십니다.
바로 이것이 사랑입니다.
그리고 기쁨은
그 길 안에서
더 이상 혼자 헤매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에서 자랍니다.
기쁨은
모든 문제가 즉시 사라져서 오는 감정이 아니라
길이신 주님이 나와 함께하신다는
깊은 신뢰에서 오는 평화입니다.
또한 오늘 성 레오 대교황을 기억하며
이 복음은 더 깊어집니다.
예수님께서 참하느님이시기에
우리의 최종 목적이 되시고,
참사람이시기에
우리의 발걸음을 실제로 이해하시며 함께 걸으실 수 있습니다.
길이신 분이 우리 바깥에만 계신 것이 아니라
우리와 같은 인간의 길을 친히 걸으셨다는 사실,
바로 여기에 큰 위로가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묻습니다.
내 마음은 지금 어디에서 산란해지고 있는가?
미래에 대한 두려움인가,
인정받고 싶은 마음인가,
통제하려는 조급함인가,
아니면 길을 잃은 피로함인가?
주님은 오늘도 말씀하십니다.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그 말씀은
문제를 즉시 없애 주겠다는 약속이 아니라
문제 한가운데서도
길이신 당신 자신을 놓치지 말라는 초대입니다.
주님,
제 마음이 흩어질 때
당신께 다시 돌아오게 하소서.
당신이 길이시니 헤매지 않게 하시고,
당신이 진리이시니 속지 않게 하시며,
당신이 생명이시니
지친 제 영혼을 다시 일으켜 주소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