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12,44–50
예수님께서는 큰 소리로 말씀하십니다.
“나를 믿는 사람은 나를 믿는 것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것이다.
나를 보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을 보는 것이다.”
그리고 이어 말씀하십니다.
“나는 빛으로 세상에 왔다.
그러니 나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어둠 속에 머무르지 않게 된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단지 한 시대의 스승이나
아름다운 가르침을 전하는 분이 아니라
아버지를 드러내시는 분이심을 보여 줍니다.
예수님을 본다는 것은
하느님의 얼굴을 향해 마음이 열리는 일이고,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다는 것은
하느님의 생명 안으로 초대받는 일입니다.
나지안조의 성 그레고리오는
그리스도 안에서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영광이
우리의 눈높이로 다가왔다고 묵상했습니다.
하느님은 멀리 계신 추상적인 분이 아니라
성자 안에서
빛과 진리와 자비의 얼굴로
우리 가운데 오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막연한 종교적 감정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빛 안으로 걸어 들어가는 응답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세상을 심판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세상을 구원하러 오셨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동시에
당신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그 말씀 자체에 의해 마지막 날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두려움의 선언이라기보다
진리에 대한 깊은 요청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무너뜨리기 위해 빛을 비추시는 것이 아니라
살리기 위해 빛을 비추십니다.
하지만 빛을 거부할수록
우리는 스스로 어둠 안에 머물게 됩니다.
사랑/기쁨 주간에
이 말씀은 특별히 깊게 다가옵니다.
사랑은
진실을 흐리게 하는 모호함이 아니라
상대를 살리는 빛으로 다가가는 힘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사람을 어둠 속에 그대로 두지 않고
빛 쪽으로 부르시는 사랑입니다.
그래서 사랑은
따뜻한 위로이면서도
동시에 삶의 방향을 바로잡는 진실입니다.
그리고 기쁨은
그 빛 안에서
더 이상 길을 잃지 않는 데서 자라납니다.
기쁨은 단지 기분 좋은 순간이 아니라
내 삶이 다시 어디로 가야 하는지
분명해질 때 오는 내적 평화입니다.
오늘은 그리스도인 일치의 날입니다.
이 복음은 일치의 길을 분명히 보여 줍니다.
일치는
차이를 억지로 지우는 데서 오지 않고
같은 빛이신 주님께 시선을 모을 때 시작됩니다.
우리가 서로를 이기려 할수록 멀어지지만,
함께 주님을 바라볼수록 가까워집니다.
주님의 빛은
교회를 쪼개는 빛이 아니라
흩어진 이들을 다시 하나로 모으는 빛입니다.
오늘 우리는 조용히 묻습니다.
나는 빛 안에 머물고 있는가,
아니면 익숙한 어둠 안에 숨어 있는가?
나는 예수님의 말씀을
잠시 듣고 지나치는가,
아니면 내 삶을 비추는 기준으로 받아들이는가?
나는 공동체 안에서
일치를 세우는 사람인가,
아니면 분열을 깊게 하는 사람인가?
주님께서 주시는 사랑은
우리를 방치하지 않고,
주님께서 주시는 기쁨은
우리의 길을 잃지 않게 합니다.
주님,
당신을 통해 아버지를 보게 하시고
당신의 말씀 안에서
제 삶의 방향을 다시 찾게 하소서.
빛이신 당신을 거부하지 않게 하시고
사랑 안에서 진리를 받아들이며
기쁨 안에서 어둠을 벗어나게 하소서.
또한 갈라진 마음과 교회들을
당신 빛 안에서 다시 하나로 모아 주소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