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6,22–29
군중은 예수님을 다시 찾아옵니다.
그들은 빵을 먹고 배부른 경험을 기억하고,
다시 그 만족을 원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방향을 바꾸어 주십니다.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애쓰지 말고,
영원한 생명을 위하여 남아 있는 양식을 얻으려고 애써라.”
그리고 “하느님의 일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예수님은 한 문장으로 말씀하십니다.
“하느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 그것이 하느님의 일이다.”
오리게네스는
사람이 하느님을 찾는다고 하면서도
사실은 하느님을 수단으로 삼는 경우가 많다고 말합니다.
기적을 “하느님 자체”가 아니라
“내가 원하는 것을 얻는 도구”로 만들 때,
믿음은 곧 지치고 흔들립니다.
오늘 복음은 우리를 평화/인내의 길로 부릅니다.
평화가 깨지는 순간은 종종
삶이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을 때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내가 기대한 결과가 아니라
당신 자신을 믿으라고 초대하십니다.
인내는 바로 여기에서 시작됩니다.
“하느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결과가 아니라 관계로 붙드는 힘,
그 힘이 믿음입니다.
오늘 월요일 거룩한 독서의 날에
우리는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나는 무엇을 ‘양식’으로 삼고 있는가?
내 마음을 살리는 것은
성과인가, 인정인가, 편리함인가,
아니면 주님 자신인가?
주님을 믿는다는 것은
세상이 흔들릴 때에도
내 중심이 무너지지 않도록
영원한 양식을 받아들이는 일입니다.
주님,
제가 당신을 수단으로 삼지 않게 하시고
당신을 당신으로 믿게 하소서.
결과가 늦어도, 길이 멀어도
평화와 인내로
당신 안에 머무르게 하소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