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6,1–15
큰 군중이 예수님을 따라옵니다.
예수님은 물으십니다.
“이 사람들이 먹을 빵을 어디서 살 수 있겠느냐?”
제자들은 계산합니다.
“이백 데나리온어치 빵으로도 부족합니다.”
그런데 한 아이가 가진
보리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을 앉히시고
감사 기도를 드리신 뒤
빵과 물고기를 나누어 주십니다.
모두 배불리 먹고도
열두 광주리가 남습니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이 기적을 ‘양이 늘어난 사건’으로만 보지 않게 합니다.
그는 묻게 합니다.
무엇이 우리를 배부르게 하는가?
사람은 빵이 없으면 살 수 없지만,
빵이 있어도 마음은 여전히 굶주릴 수 있습니다.
아우구스티노에게 참된 굶주림은
위장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방향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 굶주림을 “물건”으로만 채우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먼저
감사와 질서와 나눔 속에서
사람들의 마음을 다시 공동체로 묶으십니다.
오늘 2주 친절/선행 주간에서
이 복음은 이렇게 들립니다.
• 친절은 ‘내 것을 빼앗기는 손해’가 아니라
굶주린 이를 앉히는 배려입니다.
• 선행은 ‘대단한 기적’이 아니라
아이의 작은 빵을 내어놓는 용기에서 시작됩니다.
• 그리고 주님은
우리의 작은 것을 붙잡아
공동체를 살리는 큰 은총으로 바꾸십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억지로 임금으로 세우려 할 때,
예수님은 물러나십니다.
아우구스티노의 관점에서
주님은 ‘권력’을 원하지 않으시고
‘사랑의 질서’를 원하십니다.
주님이 주시는 배부름은
권력의 승리가 아니라
나눔의 평화입니다.
오늘 우리는 묻습니다.
내 마음은 무엇을 향해 쉬지 못하는가?
그리고 오늘 나는
누구의 굶주림 앞에서
작은 빵 하나라도 내어놓을 수 있는가?
주님,
제 마음의 굶주림이
헛된 욕망으로 채워지지 않게 하시고
당신 사랑으로 배부르게 하소서.
오늘 작은 친절 하나, 작은 선행 하나를
용기 있게 내어놓게 하시고
그것이 누군가를 살리는 은총이 되게 하소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