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 이미 말씀드린 대로 우리가 하느님을 믿고
하느님께 감사드리는 것은, 크게 두 가지 곧 하느님의 창조와 구원입니다.
하느님이 우리의 창조자요 구원자라는 것을 우리가 믿으며,
창조하셨을 뿐 아니라 죄를 지었어도 끝까지 구원해주심에 감사 드립니다.
이 사랑을 잘 드러내는 것이 성 목요일 주님 만찬 미사 때 복음 말씀이지요.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아버지께로 건너가실 때가 온 것을 아셨다.
그분께서는 이 세상에서 사랑하신 당신의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셨다.”
요한복음이 이 말씀을 한 것은 곧 제자들이 배반의 죄를
모두 지을 것을 염두에 두고 한 말씀이지요.
그런데 이렇게 끝까지 사랑하시는 주님 사랑을 믿었느냐?
믿지 않았느냐? 여기에 제자들의 운명이 갈렸습니다.
끝까지 그리니까 배반할지라도 사랑하실 것을 믿은 제자들은 죽지 않았지만
유다는 이 사랑을 믿지 않았거나 거부했기에 죽음으로 생을 마감하였습니다.
같은 맥락에서 오늘의 요한복음은 이렇게 얘기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우리가 하느님을 믿는다는 것은 이 사랑을 믿는 것입니다.
이것을 믿는 것이 하느님의 능력을 믿는 것보다
어쩌면 우리에게 더 중요한 것이고
하느님께서도 이 믿음을 더 기꺼워하시고 고마워하실 것입니다.
배반한 제자들을 놓고 이 믿음의 중요성을 얘기했지만
악령들에 대해 얘기하면 이 중요성이 더 잘 드러날 것입니다.
악령들은 하나같이 예수님의 정체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느님의 아들이시고 거룩하신 분이라고 잘 알고 있었지만
그들은 자기들을 구원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괴롭히려고 오셨다고 믿고
그래서 주님이 자기들과 뭔 상관이 있냐며 자기들을 떠나달라고 했지요.
오늘 요한복음도 같은 맥락에서 주님께서는 구원하러 오셨지만
이 구원을 믿지 않은 사람은 결국 심판을 받는다고 얘기합니다.
“아들을 믿는 사람은 심판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믿지 않는 자는 이미 심판을 받았다.”
빛을 거부하는 것이 어둠입니다.
더 정확히 얘기하면 빛을 사랑하지 않고 거부한 결과가 어둠입니다.
하느님은 어둠을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어둠은 실재(Reality)가 아니고 빛이 없을 뿐입니다.
빛이 우리를 비추면 우리는 밝음이고 그렇지 않으면 어둠입니다.
빛이신 하느님은 우리를 가려서 당신 빛을 비추시지 않고,
선한 사람이나 악한 사람이 똑같이 빛을 비추시는 분인데
우리가 그 빛을 거부하거나 그렇지 않거나 할 뿐이겠지요.
그런데 왜 거부하겠습니까?
자기의 죄악이 드러나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하느님 사랑을 거부한 것이 죄와 악이고,
주님께서 심판하신 것이 아니라
사랑을 거부함으로써 스스로 심판받는 것입니다.
하느님 사랑과 하느님 구원을 믿는 것이
내게도 그렇게 어려운 것인지 묻는 오늘 우리입니다.

강론하셨는지 비교하면 더욱 풍성한 내용을
알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