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 민족을 위하여 돌아가시리라는 것과 이 민족만이 아니라
흩어져 있는 하느님의 자녀들을 하나로 모으시려고 돌아가시리라는 것이다.”
지금 순례를 하고 있는 우리는 오늘 독서와 복음을 다시 순례의 관점에서 봅니다.
주님께서는 왜 하늘로부터 세상 순례를 오셨을까?
또 공생활 내내 왜 이 세상 순례를 하셨을까?
정답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또 이렇게 물을 수 있습니다.
말씀 한마디로 창조하신 분이 이 세상 순례를 굳이 하지 않고서도
곧 한 말씀만으로도 구원하실 수 있지 않을까?
우리는 백인대장과 같은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백인대장은 자기 종을 고쳐주시기 위해 굳이 누추한 자기 집에 오실 필요 없다고,
한 말씀만 하시면 자기 종이 곧 나을 것이라고 믿었으며 그리고 그렇게 됐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느님께서는 한 말씀만으로 곧 능력으로 우리를 구원하실 수 있으십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또한 땅에까지 내려오시어 창조하신 분이십니다.
창세기 1장에서 말씀만으로 창조하신 하느님께서는
창세기 2장에서는 친히 땅에까지 내려오시어 그 흙으로 창조하셨습니다.
보이지 않고 말씀만으로 창조하신 것보다 훨씬 더 사랑이고 따듯합니다.
구원의 하느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부께서는 아들을 보내시지 않고도 구원하실 수 있고
구약은 그래서 아드님 대신 예언자를 보내셨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예언자가 아니라 당신 성자까지 보내셨고,
성자는 아버지께서 보내셔서 오신 분이라고 우리는 믿습니다.
예수님께서도 그런 비유를 하신 적이 있습니다.
주인이 자기 소작인들에게 도조를 받아 오라고 종들을 보냈더니
소작인들은 보내는 족족 죽여 버렸고 아들을 보냈더니 상속자라며 죽였다고.
어쨌거나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구원하시기 위해서이고,
구원이란 흩어진 하느님 백성을 한데 모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데 모으시기 위해 오셨는데
이 백성은 여전히 갈라지고 흩어져 있고,
모으기 위해 애쓰신 주님께서는 팍 죽어버리셨는데 그렇다면 구원 실패 아닙니까?
맞습니다.
실패이고 실패가 아닌 것이 아닙니다.
인류는 천지창조 이래 내내 분열하였고,
예수님이 다녀가신 뒤에도 내내 분열하였으며
이런 면에서 성공하신 적은 한 번도 없었고 내내 실패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제 알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은 성공이 아니라 사랑이고,
우리도 성공이 아니라 사랑에 목적을 두게 하려는 것이며,
실패하여 죽임을 당하더라도 끝까지 사랑하셨음을 보여 주시려 함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제자들마저 배반하고 흩어질지라도 최후 만찬 때
끝까지 사랑을 보이셨으며 그럼으로써 실패는 사랑의 실패가 실패요,
끝까지 사랑하는 것 이것이 바로 성공이요 구원임을 보여 주셨던 것입니다.
실패해도 사랑하는 것,
죽어도 끝까지 사랑하는 것,
이것이 십자가의 희생적인 사랑의 성공이고 천국의 성공이며 참 구원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다른 누구보다 먼저 믿는 사람들이며
이런 사랑이 없어 흩어진 사람들에게 증거하기 위해
프란치스코와 수많은 성인들처럼 찾아가는 순례자들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