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5,1–16
예루살렘의 베짜타 못가에는
오랜 세월 앓아온 병자들이 누워 있습니다.
그들 가운데 서른여덟 해나 앓아온 사람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물으십니다.
“낫고 싶으냐?”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일어나 네 들것을 들고 걸어가라.”
이 사람은 곧 낫고, 들것을 들고 걸어갑니다.
그러나 기쁨의 순간에
사람들은 생명을 기뻐하기보다 규정을 따집니다.
“안식일에 들것을 들면 안 된다.”
대 바실리오는
이 장면에서 우리 마음의 습관을 봅니다.
하느님께서 사람을 살리시는 은총 앞에서도
우리는 쉽게 형식을 앞세워
생명을 불편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에게 안식일의 뜻은
사람을 묶는 규정이 아니라
사람을 살리고 쉬게 하는 자비의 질서입니다.
예수님의 질문 “낫고 싶으냐?”는
병자에게만 던져진 말이 아닙니다.
우리에게도 묻습니다.
나는 정말 회복을 원하는가,
아니면 익숙한 상처에 기대어
변화를 미루고 있는가.
그리고 예수님의 명령 “일어나라”는
의지력 시험이 아니라
은총의 부르심입니다.
대 바실리오의 눈으로 보면,
회복은 나 혼자 일어서는 기술이 아니라
말씀에 의해 일으켜 세워지는 사건입니다.
문화 주간의 오늘, 우리는 배웁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정보가 아니라 움직임을 낳는 힘입니다.
들것을 들고 걷는다는 것은
‘내 과거’를 숨기지 않되,
그 과거에 눌려 살지 않겠다는 선언입니다.
주님께서 나를 낫게 하셨으니
이제 나는 걸어가는 사람이 됩니다.
주님,
제가 변명을 붙잡고 눕지 않게 하시고
당신의 “일어나라”는 말씀에 응답하게 하소서.
형식보다 생명을 먼저 보게 하시고,
회복의 길을 실제로 걷게 하소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