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에페소서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형제 여러분, 여러분은 한때 어둠이었지만
지금은 주님 안에 있는 빛입니다.
빛의 자녀답게 살아가십시오.”
오늘 에페소서의 태생 소경이 바로 이런 존재였습니다.
중도 장애가 아니라 태어날 때부터 보지 못하였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소경이었기에 그것이 어둠인 줄도 몰랐고,
그래서 공관복음의 다른 소경들처럼 절망도 없었고,
벗어나고 싶은 갈망도 없었으며 그래서 주님께 보게 해 달라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사순시기의 요한복음은 이런 인물들을 계속 들려줍니다.
지난주에는 우물가의 여인을 소개했는데 사랑의 갈증이 있는 여인에게,
다섯 남자와 결혼했지만 만족할 수 없었던 여인에게 주님은 청하지 않았는데도
다가가시어 그의 갈증이 영적인 갈증이란 것을 일깨워 주신 얘기를 들려줬지요.
오늘도 주님께서는 보게 해달라고 청하지 않는 그에게 다가가시고,
또 묻지도 않고 그의 눈을 뜨게 해 주십니다.
사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청하지도 않았는데도 이 세상에 오신 분이십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는 분인지도 모르고 청해도 되는 건지도 몰라
우리가 청하지 않았는데도 이 세상에 오시고 우리에게도 오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도 한때 어둠이었지만 주님께서 우리에게 오셨기에
이제는 에페소 말씀처럼 ‘주님 안에 있는 빛’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의 다른 사람들은 주님의 빛 안에 있지 않고,
그래서 육신의 눈이 멀쩡해도 영적으로 어둠 가운데 있습니다.
당연합니다.
주님의 빛을 받지 않으면 아무리 눈이 멀쩡해도
또 아무리 기를 쓰고 보려 해도 볼 수 없습니다.
빛이 한줄기도 없다는 것을 상상해보십시오.
아무리 눈을 떠도 아무것도 볼 수 없습니다.
나는 보지만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빛이 있어야 보이는 겁니다.
우리는 우리가 눈만 뜨고 있으면 당연히 볼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빛이 있어야 보이는 것이니 사실은 빛이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것을 오늘 복음에 그대로 적용하면 빛이신 주님께서
볼 수 없었던 소경을 볼 수 있게 해주신 것이고,
반대로 사람들이 볼 수 없었던 것은 빛이신 주님 없이 보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주님 없이 보려고 했던 것은
한 편으로는 주님을 빛이라고 생각지 않았기 때문이고
다른 한 편으로는 주님 없이도 잘 본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주님은 이렇게 결론 지으십니다.
“너희가 눈먼 사람이었으면 오히려 죄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너희가 ‘우리는 잘 본다.’ 하고 있으니, 너희 죄는 그대로 남아있다.”
우리말에 ‘눈뜬장님’이라는 말이 있지요.
진정 그들이야말로 영적으로 눈뜬장님이고,
육의 눈이 멀쩡한 것이 영의 눈을 멀게 한 셈이며,
그것이 그들의 불행인데 우리도 그런 것은 아닌지 돌아보는 오늘 우리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