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사 예언자 시대에 이스라엘에는 나병 환자가 많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시리아 사람 나아만만 깨끗해졌다.”
오늘 주님 말씀대로 주님께서 환자가 많아도 다 고쳐 주지 않으십니다.
여기서 주님께 원망도 하게 되고 질문도 하게 됩니다.
왜 누구는 고쳐 주시고 저는 고쳐 주지 않으십니까?
이것이 한편으로는 원망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질문이지요.
그렇다면 원망으로 이렇게 묻는다면 회개해야 하고,
다만 그 뜻을 알고 싶은 것뿐이라면 겸손하게 질문해야겠지요.
하느님은 왜 모두를 고쳐 주지 않으시는 걸까요?
고쳐 주고 안 고쳐 주는 것은 당신 맘대로라는 걸까요?
그것이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고쳐 주시는 걸까요?
솔직히 알 수가 없습니다.
다만 주님 말씀을 믿을 뿐입니다.
네 믿음이 너를 살렸다는 말씀 말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주님이 예로 드신 나아만은 믿음의 인물입니까?
처음에는 믿음의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처음에는 하느님을 믿기보다 자기를 믿었습니다.
자기 권력이나 재물을 믿었습니다.
하느님 앞에 나아올 때 군대와 많은 재물과 함께 올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또 하느님을 믿기보다 사람을 믿었습니다.
군대와 많은 재물을 가지고 온 것도 실은 엘리사를 믿었기 때문입니다.
엘리사에게 선물일지 뇌물일지 뭘 줘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의 이런 잘못된 믿음을 깨고 정화시킨 것이 바로 엘리사의 처신입니다.
나아만이 그렇게 거창하게 왔지만 엘리사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그런 그를 엘리사는 대단하게 여기거나 쫄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무시하지도 않았습니다.
하느님의 예언자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요르단강물에 몸을 씻으라고 한 뜻은
몸만 정화케 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믿음을 정화케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하느님께 나올 때는 아무것도 가지지 말고
오직 믿음만 가지고 나오면 되는 것이라고.
하느님은 의사와 다르십니다.
의사는 돈을 받고 고쳐 주지만 하느님은 순전히 자비로 고쳐 주십니다.
의사는 권력자와 부자를 먼저 고쳐 주고 정성껏 고쳐 주지만
하느님은 그런 자일수록 고쳐 주지 않고 가난하고 겸손한 사람을 고쳐 주십니다.
그리고 하느님은 가난하고 겸손하게 믿는 사람을 고쳐 주시는 분이시기에
하느님 자비에 겸손하게 맡기지 않고 반드시 고쳐 주셔야 한다며
강짜를 부리거나 욕심을 부리는 자는 고쳐 주시지 않을 것입니다.
아무것도 없이 우리를 창조하신 하느님은
아무것도 없는 우리를 구원해주실 겁니다.
믿음 외에 다른 아무것도 없는 우리를!

강론하셨는지 비교하면 더욱 풍성한 내용을
알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