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주님은 광야에서 혹독한 유혹을 받으셨습니다.
오늘 주님은 타볼산에서 모습이 영광스럽게 바뀝니다.
그렇지만 주님은 타볼산에서 내려가시어 해골산에 오르실 것이고,
거기서 십자가에 올라가 매달리셨다가 다시 저승에 내려가시지만
마침내는 하늘로 영광스럽게 오르실 것입니다.
이렇게 주님께서는 영광스러움과 비참함,
죽음과 생명을 오르내리시는 분이시고,
산으로 치면 골짜기를 건너 꼭대기로 오르시는 것이며,
인간의 산에서 내려와 골짜기를 지나 하느님의 산으로 오르시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느님의 산으로 오르기 위해서는 반드시 인간의 산에서 내려와야 하고,
죽음의 심연이랄까 골짜기를 반드시 건너야 하는데 이 건너감을 파스카라 합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건너가신 그 길을 우리도 반드시 따라가야 하는데,
우린 오늘 베드로처럼 산 위에 계속 있겠다며 그 길을 가지 않거나
거쳐서 가지 않고 건너뛰어서 건너가려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베드로를 포함한 세 제자만 타볼산에 데리고 가시어
당신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보여주신 것은 세 제자만 산에 머물라고
데리고 가신 것이 아니고 영광스러운 모습을 보여주신 것이 아닙니다.
공동체의 다른 사람들이 죽음의 골짜기를 지날 때,
절망감 때문에 더 이상 길을 가려고 하지 않을 때
자기들이 먼저 본 산 위의 영광을 얘기하며 희망을 북돋우라고 하심입니다.
그러니까 타볼산의 변모를 세 제자만 본 것을 영화와 비교하면
본 편에 앞선 예고편을 세 제자만 본 것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이 예고편을 본 사람은 두 가지 태도를 지닐 것입니다.
하나는 각오이고 다른 하나는 희망입니다.
각오는 최악을 각오하는 것이요 죽을 각오를 하는 것인데
죽음을 반드시 거쳐 가야지 건너뛰어 갈 수 없음을 알고 각오하는 것입니다.
사실 최악을 각오할 때 악들이 선이 되고,
바닥을 치고 위로 오르듯 최악이 왔을 때
거기서 희망을 가지고 오를 수 있습니다.
희망은 이렇게 생겨나고 시작되는 것입니다.
공이 바닥을 쳐야 위로 튀어 오르는 것처럼
희망도 절망이라는 바닥을 쳐야 튀어 오르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희망과 절망, 절망과 희망의 예고편을 미리 보여주신 것은
용감하게 바닥으로 내려가라고, 거기서부터 힘차게 치고 올라가라고
주님께서 세 제자뿐 아니라 공동체를 위해 주신 친절한 서비스일 것입니다.

강론하셨는지 비교하면 더욱 풍성한 내용을
알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