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주제는 ‘하느님께서 기뻐하실 일’이 아닐까 싶은데
제 생각에 독서에서는 개인적인 차원을 얘기하는 것 같고
복음에서는 관계적인 차원을 얘기하는 것 같습니다.
먼저 독서에서는 악인일지라도 살게 되는 것,
다시 말해서 악한 길에서 돌아서서 살게 되는 것을
주님께서는 바라시고 그래서 회개했을 때 기뻐하십니다.
이것은 악한 사람이 죽게 되기를 바라는 우리의 미움과 완전히 반대되는 겁니다.
우리는 내게 악한 짓을 하지 않았더라도 악한 사람은 죽었으면 좋겠다고,
적어도 사라져줬으면 좋겠고 심하게는 천벌 받아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사랑의 사람인지 아닌지를 가르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착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만으로는 사랑의 사람이라고 할 수 없고
악한 사람일지라도 살게 되기를 바랄 때 사랑의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랑의 사람이 아닐 때는
요나가 니네베인들이 살게 되기를 싫어했던 것처럼
악한 자가 회개하여 살게 되는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이것이 부모와 형제의 차이이기도 하지요.
부모는 자녀가 아무리 악하고 죄를 많이 지었어도 회개하기를,
살게 되기를, 행복하기를 바라지만 형제는 그러지 않을 수 있습니다.
아무튼 하느님께서는 우리 인간이 악에서 회개하여 살게 되기를 바라시는데,
복음의 주님께서는 개인의 회개를 넘어 관계적으로도 잘 되기를 바라십니다.
관계를 좋게 만들지 않고 다시 말해서 관계적 평화가 없이 개인의 평화가 없지요.
화해 없이 평화 없지요.
관계의 화해 없이 개인의 평화가 가능할까요?
관계가 평화로와야 개인도 평화로울 수 있습니다.
그러니 관계가 평화롭지 않으면서 개인이 평화롭기는 꿈도 꾸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 주님께서는 구약의 사랑 가르침을 능가하는
당신의 사랑 가르침을 말씀하신 다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네가 제단에 예물을 바치려고 하다가,
거기에서 형제가 너에게 원망을 품고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거기 제단 앞에 놓아두고 물러가 먼저 그 형제와 화해하여라.”
신앙인으로서 왜 이래야 하는지 우리는 잘 압니다.
우리의 자식들이 뭔 이유로 다투고는 명절이 되고,
생일이 되어도 같이오지 않고 따로 오면
아무리 값진 선물을 가지고 오더라도 그것은 그리 기쁘지 않습니다.
부모를 기쁘게 하는 것은 값진 선물이 아니라 자녀들이 서로 사랑하는 겁니다.
하느님께서도 당신의 자녀들이 서로 화해하고 화목한 것을 가장 기뻐하십니다.
이웃을 남이나 원수가 아니라 하느님 안에서 형제들이라고 생각하고 믿는다면,
그리고 이 사순절에 회개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면
관계의 회복도 해야겠습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기뻐하시도록!

강론하셨는지 비교하면 더욱 풍성한 내용을
알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