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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져야하는 십자가의 진실

by 이마르첼리노M posted Feb 19,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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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져야하는 십자가의 진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루가복음 9:23)

 

날마다 지는 십자가의 진실은 흔히 우리가 오해하듯 단순히 '인생의 고난'이나 '피할 수 없는 불행'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훨씬 더 능동적이고 선택적인 영적 훈련에 가깝습니다.

 

첫째 주도권의 교체입니다. 십자가를 지기 전 선행되어야 하는 것은 자신을 버리는 것입니다. 이는 내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의 결정권을 내려놓는 것을 의미합니다. 내 뜻과 하느님의 뜻, 내 욕망과 계획이 하느님의 가치관과 충돌할 때, 기꺼이 내 것을 뒤로 미루는 연습입니다. 내가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는 자유를 뜻합니다.

 

둘째 날마다라는 말은 일회적 결단이 아닌 일상의 반복입니다. 예수님은 단 한 번의 순교가 아니라 날마다 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어제의 은혜로 살 수 없음을 뜻합니다. 십자가는 매일 아침 새롭게 선택해야 하는 과제입니다. 오늘 만나는 무례한 사람을 용서하는 것, 정직하기 어려운 순간에 진실을 택하는 것 등 아주 작은 일상 속에 십자가가 있습니다.

 

셋째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은 각자에게 최적화된 무게를 진다는 것입니다. 모두가 똑같은 십자가를 지지 않습니다. 나에게만 주어진 독특한 사명과 책임이 있습니다.타인의 십자가가 더 가벼워 보인다고 불평하거나, 내 것이 더 무겁다고 낙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십자가는 형벌이 아니라, 그 과정을 통해 나를 빚으시는 맞춤형 훈련 도구입니다.

 

넷째 죽음 뒤에 오는 '생명'이 반드시 있다는 믿음에서 나오는 희망에서 출발하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역설은 죽어야 산다는 것입니다. 자아의 죽음, 곧 이기심과 교만이 죽을 때, 비로소 내 안에 진정한 사랑과 평안이 숨 쉴 공간이 생깁니다. 부활의 전제 조건에서 지는 십자가입니다. 십자가 없는 부활은 없습니다. 날마다 나를 내려놓는 고통 뒤에는 세상이 줄 수 없는 영적인 생명력이 뒤따릅니다. 십자가는 내가 억지로 끌려가는 도살장이 아니라, 더 큰 사랑을 위해 내 고집을 기꺼이 장사 지내는 제단입니다.

 

 

오늘이라는 골고타

나의 일상의 죽음, 새벽의 푸른 안개가 채 가시기 전, 나는 머리맡에 놓인 익숙하고도 낯선 형틀을 봅니다. 그것은 이천 년 전 먼지 날리는 예루살렘 언덕의 거창한 나무 기둥이 아니라, 오늘 내가 살아가야 할 지극히 평범하고도 곤혹스러운 '시간'의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자신을 버린다는 것, 그것은 나의 존재를 지워 없애는 허무의 몸짓이 아닙니다. 내 안에서 시시각각 고개를 드는 '나라는 우상'의 왕관을 벗겨내는 일이며, 내가 내 삶의 유일한 입법자이자 재판관이라는 오만을 내려놓는 항복 선언입니다. 내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 하루의 변수 앞에서 신경질을 내는 대신, 그 어긋남 속에 숨겨진 당신의 섭리를 믿으며 나의 조급함을 죽이는 일입니다.

 

날마다 지는 십자가는 어쩌면 이런 것들일지도 모릅니다. 나를 비난하는 이의 입술 앞에서 내 결백을 증명하려 혀를 날카롭게 세우지 않는 것, 나의 옳음을 주장하기보다 상대의 아픔을 먼저 살피느라 잠시 바보가 되어주는 것, 모두가 높은 곳을 향해 질주할 때, 낮은 곳에 고인 눈물을 닦아주려 기꺼이 발걸음을 멈추는 것. 화려한 순교의 피는 흘리지 않을지라도, 매 순간 꿈틀대는 나의 자존심과 이기심을 작은 바늘로 찌르며 그 독소를 빼내는 지루하고도 고통스러운 반복의 과정입니다.

 

십자가는 결코 남의 어깨에 메워진 짐을 구경하는 도구가 아닙니다. 내 등 위에 딱딱하게 밀착된, 오직 나만을 위해 맞춤 제작된 이 나무의 무게는 나를 짓눌러 무너뜨리려는 형벌이 아니라 내가 엉뚱한 길로 이탈하지 않도록 중심을 잡아주는 사랑의 닻입니다.내가 이 무게를 거부하고 내던지는 순간, 나는 자유를 얻는 것이 아니라 욕망이라는 이름의 거센 파도에 휩쓸려 나 자신을 잃어버리고 말 것입니다.

 

주님, 내가 오늘 지는 이 십자가가 나를 죽이는 도구가 아니라 나를 살리는 통로임을 알게 하소서. 나의 옛 자아가 이 나무 위에서 서서히 숨을 거둘 때, 비로소 내 안에 당신이 살기 시작하고 나의 메마른 인격 위에 당신의 온유함이 꽃피는 역설을 보게 하소서.

 

해 저무는 저녁, 땀과 눈물로 얼룩진 십자가를 내려놓으며 깨닫습니다. 오늘 하루, 내가 죽었기에 누군가는 살아났고, 내가 낮아졌기에 누군가는 위로를 얻었음을. 이 십자가는 내가 지고 가는 것 같았으나, 사실은 주님의 영과 함께 그 십자가가 나를 붙들고 여기까지 왔음을 고백합니다. 내일 아침, 다시 눈을 뜨면 나는 또 한 번 그 가벼운 듯 무거운 나무를 향해 손을 뻗겠습니다. 그것이 당신의 뒤를 따르는 유일한 길이자, 가장 나다운 나로 부활하는 생명의 문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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