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 생명과 죽음, 축복과 저주를 너희 앞에 내놓았다.
너희와 너희 후손이 살려면 생명을 선택해야 한다.
주 너희 하느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말씀을 들으며 그분께 매달려야 한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제가 가끔 죽음을 예감하거나 각오하는 듯한 말을 하면,
예를 들어 미래 어떤 일을 얘기하거나 계획할 때
제가 그때까지 살아있을지 어떻게 아냐고 얘기하면
말이 씨가 되니 그런 말은 입에 올리지도 말라고 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토록 죽음은 아예 입에 올리기도 싫어하고 생각조차 하지 않으려는 우리에게
주님께서는 생명과 축복을 죽음과 저주와 함께 우리 앞에 내놓는다고 하십니다.
사실 생명과 축복만 우리 앞에 내놓는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생명과 죽음을 앞에 놓고 선택하는 고통이 없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래서 일부 사이비 종교나 종파들은 이런 인간의 심리를 이용하여
사람들을 자기들에게 끌어들이는데 삼박자 축복처럼 자기들 교회를
믿으면 축복만 받는 그런 구원을 받는다고 속이는 것입니다.
자기들 교회를 선택하면 생명과 죽음 가운데서 선택할 필요가 없고,
축복과 저주 가운데서 선택할 필요가 없다고 꼬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이런 꼬심에 넘어갑니까?
심리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약한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이 대체로 영적으로도 약하게 되는데
고통이나 죽음이 너무 무섭고 두려워 직면하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하느님께서 내미시는 데도 그것이 그렇게 무섭고 두려운 것이고,
하느님께서 손을 내미시는 것인데도 그것이 그렇게 무섭고 두려운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느님께서는 생명과 죽음을 우리에게 내미시고,
당신 손도 내미시며 생명을 선택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생명으로 들어가려면 반드시 죽음의 강을 건너야 하는데
당신 손을 잡고 건너면 된다고 하시며 손을 내미시는 겁니다.
주님께서 그 밤에 제자들에게 호수를 건너라고 하셨습니다.
가다가 풍랑을 만나 죽게 되었는데 한번은 같이 또 한번은 따로입니다.
두 번째로 제자들만 호수를 건너고 다시 풍랑을 만나 죽게 되었을 때
주님께서 그들에게 나타나셔서는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하고 말씀하십니다.
이때 베드로만 용기를 내어 “주님, 주님이시거든 저더러 물 위를 걸어오라고
명령하십시오.” 하고 청하고 주님께서 그러라고 하시자 베드로도
물 위를 걸어 주님께 가는데 풍랑을 보고 그만 물에 빠지게 됩니다.
주님만 보고 계속 갔으면 두렵지도 않고 물에 빠지지도 않았을 텐데
물을 보자 두려움에 빠진 것이고 물에도 빠진 것입니다.
그래도 베드로는 다시 주님을 보고 살려달라고 청하고
주님께서 손을 내밀자 손을 잡고 극적으로 살아납니다.
그렇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죽음의 호수도 건너게 하시고 손도 내미시듯
우리에게 선택하라고 생명과 죽음도 내미시고 구원의 손도 내미십니다.
직면하길 두려워하지 말고,
선택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시며,
그것들을 내미시는 분이 당신이시니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우리 앞에 내미신 생명과 죽음 앞에서 주님의 손을 잡읍시다!

강론하셨는지 비교하면 더욱 풍성한 내용을
알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