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제게 설 명절은 새해맞이 명절이라는 느낌이 그리 크지 않습니다.
우리가 실제로 사는 달력에서는 2026년 1월 1일이 새해 첫날이잖습니까?
그래서 설 명절은 새해 첫날이라는 명절이기보다는
다시 말해서 올 한 해의 시작을 기념하는 명절이기보다는
내 한 존재의 시작을 기념하고 내 존재를 있게 한 근원을 기념하는 명절입니다.
요한복음 시작의 느낌으로 의미 새김을 한다면
“한 처음 말씀이 계셨다.”에서 그 한 처음과 같은 의미랄까요?
나라는 존재가 어떻게 있게 되었습니까?
아버지와 어머니가 계셨기 때문이 아닙니까?
부모님의 부모님이 계셨기 때문이 아닙니까?
그리고 그렇게 올라가면 조상들이 있고
하느님께서 시작의 시작으로 계시지 않습니까?
아무튼 오늘은 우리 존재의 시작과 근원을 생각하고
이 모든 시작의 시작이신 하느님께 감사드리는 날이기에
오늘 <본기도>는 이렇게 기도합니다.
“시작이시며 마침이신 주 하느님,
오늘 새해 첫날을 기쁜 마음으로 주님께 봉헌하오니
온갖 은총과 복을 가득히 베푸시어 저희가 조상들을 기억하며”
내가 욥과 같은 사람이 아니라면
사는 것이 너무 고통스럽고 너무 불행하기에
내가 태어난 것을 저주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오늘 하느님께 감사드릴 것이고 조상들을 기억할 것입니다.
다음으로 설 명절은 형제들이 부모를 중심으로 모여
만남의 기쁨과 사랑의 친교를 나누는 날입니다.
그래서 <본기도>는 이어서 이렇게 기도합니다.
“화목과 친교를 이루게 하시고”
저는 나이를 먹어가면서 이런 생각을 점점 많이 합니다.
내 옆에 아무도 없다면 특히 이 명절에 내 옆에 아무도 없다면 얼마나 불행한가?
그러니 내 옆에 누가 있다는 것,
명절에 기다리는 사람이 있으며 만날 누가 있다는 것은 큰 행복인데
갈수록 명절에 찾아가고 찾아오는 걸 귀찮아하는 사람이 늘어납니다.
그런데 만나면 기쁜 사람이 하나도 없고
친교를 나눌 사람이 하나도 없는 사람은 인생을 실패한 것이니
이 명절에 인생을 근본적으로 돌아보고 설계를 다시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이런 사람이라면 이 점을 반성합시다.
나는 사람이 왜 싫어지고 두려워지고 만남을 귀찮아하게 되었을까?
신앙인이면서 내 곁에 있고 나와 만나는 사람을
하느님께서 내게 은총으로 주신 선물로 맞아들이지 않게 되었을까?
다행히 그런 사람이 아니라면 오늘 기뻐하고 감사하며
오늘 <본기도>의 마지막 기도처럼 사십시다.
“언제나 주님의 뜻을 따르며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게 하소서.”
주님께서 내려주시는 복 많이 받으시고,
영육 간에 건강하시어 복 농사도 많이 지으시길
바라고 빌며 이 명절 아침에 큰 절 올립니다.

강론하셨는지 비교하면 더욱 풍성한 내용을
알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