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이 시련을 받으면
믿음은 시험이라는 가마에 던져질 때 비로소 자기 색을 드러냅니다. 말로 고백하던 신뢰는 상실의 바람 앞에서 비로소 뿌리를 드러내고, 노래로 부르던 희망은 눈물의 밤을 지나며 실재가 됩니다. 견딤과 인내는 소극적인 침묵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느님이 일하실 시간을 허락하는 능동적인 신뢰입니다. 당장 이해되지 않아도 지금은 보이지 않아도 “그래도 당신을 믿습니다”라고 마음을 고요히 내어맡기는 태도입니다. 인내는 도망치지 않는 용기입니다. 고통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고통 속에서도 사랑을 잃지 않겠다는 결단입니다.
쇠붙이는 망치 아래에서 울부짖듯 떨지만 그 떨림 속에서 모양을 얻습니다. 금은 불 속에서 녹아내리지만 찌꺼기를 토해낸 뒤 더 눈부신 빛을 띱니다. 겨울나무는 앙상한 가지로 서 있지만 그 비움 속에서 봄을 준비합니다. 우리가 지금 겪는 흔들림은 뿌리가 더 깊이 박히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만약 길을 잃은 듯 막막하다면 지혜를 청하십시오. 하늘은 인색하지 않습니다. 청하는 자에게 꾸짖음 대신 빛을, 비난 대신 숨결을, 절망 대신 단순한 방향 하나를 건네주십니다. 다만 두 마음을 품지 마십시오. 세상의 계산과 하늘의 약속 사이에서 이익과 은총을 동시에 움켜쥐려 하지 마십시오. 바다는 두 방향으로 흐르지 않습니다. 마음도 그러합니다. 단순함은 가난이 아니라 집중입니다. 하나를 선택하고 그 하나에 머무는 힘입니다.
세상은 높은 곳을 자랑하고 낮은 자리를 부끄러워하지만 하늘의 법도는 다릅니다. 비천한 처지에 놓인 이는 하느님 안에서 이미 높아졌음을 기뻐하고, 많이 가진 이는 그 많음이 아침 이슬처럼 사라질 것을 깨닫는 지혜를 자랑합니다. 인내는 당신을 낮은 자리로 이끌지만 그 낮음은 패배가 아닙니다. 그곳은 주님의 영이 가장 가까이 내려오는 자리입니다.
시련은 무너뜨리기 위해 오지 않습니다. 잠들어 있던 거인을 깨우기 위해 옵니다. 자아의 껍질을 벗기고 내 안에 숨겨진 더 넓은 존재를 드러내기 위해 옵니다. 나는 생각보다 작지 않습니다. 지금의 상처보다 깊은 뿌리를 지니고 있습니다. 흔들리는 가지보다 단단한 줄기를 품고 있습니다. 인내는 시간을 잡아 늘이는 것이 아니라 시간 속에서 익어가는 것입니다. 익지 않은 열매는 달지 않듯 서두르는 영혼은 깊이를 얻지 못합니다. 그러니 오늘, 나를 통과하는 이 불의 시간 안에서 도망치지 말고, 억지로 웃지도 말고,. 그저 주님의 현존 앞에 멈추고 머물러야 합니다. 하늘의 불꽃 아래 나는 지금 구워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모난 구석은 깎이고 비어 있던 틈은 채워지고 두려움은 투명해지고 사랑은 더 맑아집니다. 이것이 기도의 현장입니다. 어떻게 사랑받고 있는지, 주님께서 어떻게 나를 돌보고 계신지을 아는 시간이 기도하는 사람의 본질적인 태도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어느 날 문득 알게 될 것입니다. 이 불이 없었다면 나는 이렇게 빛나지 못했을 것임을. 그때 나는 제련소를 원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그 시간을 통해 내 안에 심겨진 주님의 지혜가 얼마나 깊어졌는지를 조용히 웃으며 바라보게 될 것입니다. 오늘, 인내의 시간을 걷는 나의 발걸음이 마침내 닿게 될 온전함의 나라에서 가장 찬란한 보석으로 빛나기를. 그리고 그 빛이 다른 이들의 어둠을 비추는 작은 등불이 되기를 희망해봅니다.
고통은 사랑받고 있다는 믿음 아래 견디는 것이며, 압도적인 사랑은 스스로를 심판하게 합니다. 우리는 흔히 고통을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여깁니다. 마치 정복해야 할 산이나 건너야 할 강처럼 말이죠. 하지만 삶의 거대한 파도 속에서 마주하는 진정한 고통은 정복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극복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우리 존재의 일부로 스며들어 '견뎌지는' 것입니다.
고통을 극복했다는 말은 때로 기만적입니다. 깊은 상실이나 근원적인 슬픔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다만 시간이 흐르며 그 날카로운 모서리가 우리의 살결에 익숙해질 뿐입니다. 우리는 고통을 이겨내는 것이 아니라, 고통을 짊어진 채로 걷는 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견딘다는 것은 수동적인 굴복이 아닙니다. 그것은 자신의 상처를 응시하며, 무너진 폐허 위에서도 삶을 지속하겠다는 가장 치열한 의지의 표현입니다.
사랑은 가장 가혹하고 자비로운 심판입니다. "압도적인 사랑의 충격이 스스로를 심판하게 한다"는 말은 사랑의 본질을 꿰뚫습니다. 사랑은 달콤한 안식처이기 이전에, 우리를 발가벗겨 거울 앞에 세우는 빛입니다. 압도적인 사랑을 마주할 때, 우리는 비로소 자신의 초라함과 위선, 그리고 숨겨왔던 이기심을 목격합니다. 상대에 대한 경외와 헌신이 커질수록, 그에 미치지 못하는 나 자신을 향한 '심판'이 시작됩니다. 이 심판은 타인이 내리는 판결이 아닙니다. 사랑이라는 거대한 에너지에 부딪힌 영혼이 스스로에게 던지는 준엄한 질문입니다. "나는 이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는가?" "나의 존재는 타인의 삶에 어떤 의미를 주고 있는가? "
사랑에 의한 자아 심판은 고통스럽습니다. 내가 믿어왔던 견고한 자아가 무너져 내리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충격과 심판이야말로 우리를 이전과는 다른 존재로 변화시킵니다. 고통을 견뎌내며 단단해진 마음이 사랑의 심판을 통과할 때, 인간은 비로소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고 진정한 연대 속에 머물 수 있습니다. 고통은 우리를 깊게 만들고, 사랑은 우리를 넓게 만듭니다. 삶은 끊임없이 밀려오는 고통을 묵묵히 견뎌내는 과정이며, 그 과정 중에 만나는 압도적인 사랑은 우리를 끊임없이 되돌아보게 만드는 거울입니다. 우리는 고통을 통해 삶의 무게를 배우고, 압도적인 사랑의 거울 앞에 서서 나를 봅니다. 그 거울은 스스로를 심판하게 하고 그 심판을 통해 더 나은 인간으로 나아갈 용기를 얻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