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연하고 맑고 따스한 관계의 무늬 결
상처라는 덜 알려진 무늬는 유연하고 맑고 따스한 사람으로 살아가도록 현재에 대하여 눈을 뜨게 합니다. 우리는 삶이 언제나 불그레한 꽃길이거나 눈부신 황금빛 평원이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삶의 결은 종종 거칠고, 씁쓸하며, 푸르스름한 멍을 안은 채 떨고 있는 나약함 그 자체입니다. 그 결은 실패나 결함이 아니라, 살아 있음이 지나간 자리입니다. 피하지 못한 바람이 남긴 흔적이고, 사랑하려다 다치고도 다시 손을 내민 용기의 자국입니다.
우리는 흔히 슬픔을 상실 뒤에 남은 잔해쯤으로 여깁니다. 치워야 할 것, 빨리 지나가야 할 것, 마치 삶의 본류를 방해하는 부산물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슬픔은 우리 영혼이 가장 짭짜름하게 절여지는 시간입니다. 부서지지 않기 위해 굳어가는 시간이 아니라, 쉽게 깨지지 않도록 안에서부터 단단해지는 과정입니다. 상처를 숨길수록 우리는 딱딱해지고, 상처를 인정할수록 우리는 유연해집니다. 내 중심의 상처를 부끄러워하며 덮어둘 때 타인의 아픔은 위협이 되지만, 거무티티한 그늘까지 내 삶의 일부로 받아들일 때 타인의 상처는 조심스레 다가갈 수 있는 성스러운 땅이 됩니다. 그래서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은 쉽게 판단하지 않습니다. 쉽게 단정하지도, 쉽게 외면하지도 않습니다. 그는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픔은 설명으로 다뤄질 수 없고, 속도전으로 극복되지 않으며, 오직 함께 머무는 시간 속에서만 조용히 숨을 고른다는 것을 배우는 시간입니다.
배우는 사람은 나약함을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됩니다. 울음은 결코 신앙의 실패가 아닐뿐더러 울음은 사랑이 아직 살아 있다는 증거이며, 마음이 굳어 돌이 되지 않았다는 표지입니다. 울음소리가 달짝지근한 위로로 변하는 지점은 우리가 강해졌을 때가 아니라, 서로에게 기대기 시작했을 때 열립니다. 상처를 드러내고, “나도 아프다”고 말할 수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혼자가 아님을 배웁니다.
슬픔은 우리 마음의 눈을 뜨게 하는 가장 엄격하지만 자애로운 교사입니다. 그는 서두르지 않고, 대신 정확하게 가르칩니다. 무엇이 소중한지, 어디까지가 나의 한계인지, 그리고 사랑이란 결코 무사함이 아니라 기꺼이 상처받을 각오임을, 유연하고, 맑고, 따스한 사람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아픔이 없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아픔 속에서도 마음을 닫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자신의 상처를 통해 타인의 상처를 이해하고, 치유되지 않은 자리 위에서도 사랑을 멈추지 않는 현재를 사는 일입니다. 지금 이 순간의 아픔이 나를 망가뜨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 더 넓게 만들고 있음을 아는 시간이며 더 깊게 숨 쉬게 하고 있음을 잊지 마십시오. 그 상처는 흠이 아니라 당신이 사랑하며 살아왔다는 가장 진실한 무늬이니까요. 삶의 무늬 결은 유연하고 부드러운 우리말을 통해 더 아름답게 표현할 수 있으니까요.
우리의 만남은 늘 노르스름한 아침 햇살을 닮았습니다. 간밤의 걱정을 털어내고 마주 앉은 식탁 위로, 갓 구운 빵 냄새처럼 고소하고 포근한 안부가 오가지요. 특별할 것 없는 대화지만 그 속에 담긴 서로를 향한 시선은 겨울날 툇마루에 내려앉은 볕처럼 노곤노곤하게 우리 마음을 데워줍니다.
가끔 삶이 팍팍해 마음이 거무티티하게 타들어 가는 날도 있습니다. 세상의 모진 말들에 쓸리고 치여 안색이 탁해진 채 돌아온 저녁, 당신은 아무 말 없이 내 곁을 지켜줍니다. 그저 곁에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내 마음의 얼룩은 조금씩 옅어지고, 우리는 다시금 푸르스름한 새벽의 생기를 꿈꿀 수 있게 됩니다.
우리의 대화는 가끔 달짝지근해 간지럽기도 하지만, 때로는 서로의 부족함을 건드리는 씁쓰레한 충고가 섞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쓴맛은 입안을 해치는 독이 아니라, 오히려 관계의 입맛을 돋우는 약비빔 같은 것이어서 돌아서면 다시금 생각이 납니다. 적당히 짭짜름하게 간이 배어든 우리의 농담들은 세월이라는 솥 안에서 함께 끓여진 진한 국물처럼 깊고 든든합니다.
화가 나 서운함이 차오를 때면 얼굴이 불그레해져 목소리를 높이기도 하지만, 그 붉은 기운은 이내 미안함으로 번져 서로의 손목을 잡는 온기가 됩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인생에 스며들어, 너무 진하지도 너무 흐릿하지도 않게, 그저 우리만의 빛깔과 맛으로 매일매일 달큰하고도 은은한 풍경을 그려나갑니다. 참으로 기분 좋은, 우리만의 유연한 하루입니다.